[책갈피 속의 오늘]1961년 첫 민선 서울시장 취임

  • 입력 2005년 1월 4일 18시 17분


‘2할(割) 득표 시장.’

첫 민선 서울시장 김상돈(金相敦·1984년 사망) 씨에게는 당선 직후부터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따라 다녔다. 1960년 12월 29일 실시된 선거에서 집권당인 민주당 후보였던 그가 얻은 득표수가 총 유권자(111만6000여 명)의 19.5%(21만7000여 표)였기 때문.

15명의 후보가 난립했던 당시 선거의 투표율은 36.2%에 불과했다. 잦은 선거에 국민이 염증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1960년 한 해에만 ‘7월 29일 5대 참의원 선거→12월 12일 시도 의회의원 선거→12월 19일 시읍면 의회의원 선거→12월 26일 시읍면장 선거’가 치러졌다.

동아일보 1960년 12월 30일자 1면에는 전날 서울시장 선거의 썰렁한 투표장 사진과 함께 “전염병처럼 퍼져 버린 ‘그게 그거’라는 사고”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4·19혁명으로 정부가 새로 들어서도 별 수 없는데 서울시장이나 도지사가 누가 되든 무슨 상관이냐’는 흉흉한 민심에 관한 것이었다.

1961년 1월 5일 취임한 김 시장은 의욕이 넘쳤다. 자유당 시절 대표적 야당 투사답게 취임사에서 △시 예산의 낭비 방지 △공무원의 예산 행취(횡령) 방지 △신속한 사무 처결을 3대 시정 목표로 내놓았다. 같은 날 첫 기자회견에서는 “서울시 직원 모두 도둑놈이다. 과장 이상은 자진해서 사표를 제출하라”고 일갈했다. 시장이 ‘서울시=복마전’이라고 선언한 셈이었다.

손정목(孫禎睦) 서울시립대 명예초빙교수는 ‘서울 50년사’란 책에서 “그(김 시장)는 자유당 정권을 도둑놈 정권으로 단정했고 그 정부 밑에서 일하는 공무원은 모두 도둑놈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고 적었다.

취임식 다음 날인 6일 소집된 시의회가 김 시장에게 던진 첫 질문은 “시 직원 중에 도둑놈이 몇 명이고 해당 죄명은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5·16군사정변이 발발하기 일주일 전인 1961년 5월 9일까지도 김 시장은 “도둑놈들은 사표를 내려면 내라”고 호통을 쳤다고 당시 동아일보는 보도했다.

김 시장은 재임 5개월여 만에 물러났다. 서울시가 ‘복마전’이란 불명예를 벗는 데는 그로부터 수십 년의 세월이 더 필요했다.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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