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348>卷五. 밀물과 썰물

  • 입력 2005년 1월 3일 18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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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중군을 지켜야 한다. 대왕을 호위하라!”

노관과 하후영이 그렇게 외치며 3000 갑사(甲士)들로 하여금 한왕의 등 뒤를 에워싸듯 지키게 했다. 그리고 한왕과 더불어 중군을 벗어나는데, 특히 하후영은 싸움수레[전거]를 빠르게 몰아 기병을 뒤따르며 기세를 잃지 않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작은 조짐에도 민감한 게 피 튀기는 싸움터였다. 한왕이 달아나자 그때까지 용케 버텨오던 중군 외곽이 먼저 힘없이 무너졌다. 그 빈자리로 더 많은 초나라 군사들이 한군 중군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역상과 근흡이 이끌던 3만 군은 한순간에 어지럽게 흩어져 달아나는 패군(敗軍)으로 변했다.

처음 한왕은 무턱대고 관중(關中)을 바라 서쪽으로 달아났다. 그런데 그게 다시 한번 한왕을 모진 곤경에 빠뜨렸다. 20리도 못가 시퍼런 수수(휴水) 물가에 이르러서야 길을 잘못 든 줄 알고 다시 북쪽으로 길을 잡았으나, 그때는 이미 수많은 초나라 군사들이 바짝 뒤쫓고 있었다. 그 바람에 한왕 일행은 한바탕 처절한 몸부림과도 같은 싸움을 하고서야 겨우 북쪽으로 가는 길을 앗을 수가 있었다.

어렵게 앗은 길로 한참이나 정신없이 내닫던 한왕은 뒤쫓는 함성이 잦아들자 잠시 닫기를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처음 영벽 들판을 떠날 때만 해도 곁에 있던 장량과 진평이 보이지 않았다. 등 뒤를 두껍게 막아 주던 역상과 근흡도 어디서 떨어졌는지 더는 따라오지 않았다. 노관과 하후영이 반으로 줄어든 갑사들과 뒤따르고 있을 뿐이었다.

“자방선생이 보이지 않는구나. 무사한지 걱정이다.”

한왕이 애써 짜낸 여유로 노관과 하후영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전포(戰袍)를 입지 않고 서생(書生) 차림이었던 데다, 진평과 함께였으니 몸을 빼기에는 크게 어려움이 없었을 것입니다.”

노관이 그렇게 대답했다. 하지만 한왕도 노관도 한가롭게 남의 걱정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노관의 대답이 끝나기 바쁘게 동쪽에서 함성이 울리며 한 떼의 인마가 덮쳐 왔다.

“나는 초나라의 대사마(大司馬) 조구다. 우리 대왕의 뜻을 전할 테니 한군은 들어라. 대왕께서는 이제부터 너희들의 항복을 받기로 하셨다. 항복하면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처자와 더불어 여생을 보낼 수 있게 해줄 것이니 쓸데없는 고집으로 개죽음하지 말라!” 앞선 장수가 한왕 일행을 보고 그렇게 외쳤다. 자신이 길을 막고 선 상대가 바로 한왕 유방이리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있는 눈치였다. 노관이 유방을 가로막으며 앞으로 나섰다.

“살려줄 것이라면 구태여 뒤쫓아 가며 항복을 받을 까닭이 무엇이냐? 신안(新安)에서 20만 진나라 항병(降兵)을 산채 땅에 묻고도 아직도 모자라느냐? 우리 한군마저 모조리 산채로 땅에 묻어야 그 흉악한 속이 차겠느냐?”

마음이 흔들리는 한군에게 들으라는 듯이 노관이 그렇게 큰소리로 이죽거리자 성난 조구가 당장 칼을 휘둘러 덮쳐 왔다. 노관이 지지 않고 마주쳐 나가며 한왕을 재촉했다.

“앞선 100여 기를 이끌고 어서 떠나십시오. 저희도 이들을 흩어버리는 대로 뒤쫓겠습니다.”

그러자 하후영도 싸움수레의 고삐를 바짝 잡아당기며 한왕을 호위하는 기사(騎士) 하나에게 일렀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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