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로 논술잡기]‘마주치다 눈뜨다’…한국사회 쟁점 정리

  • 입력 2004년 11월 26일 16시 37분


코멘트
◇마주치다 눈뜨다/지승호 지음/414쪽 1만2000원 그린비

대학수학능력시험 부정행위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하다. 사람들은 여러 이유에서 가슴 아파 한다. 어떤 이는 양심껏 시험 본 자신이 손해 보았다는 피해의식으로 마음이 아프다. 어떤 이는 대학 간판이 인생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세상이 어린 학생들을 망쳐놓았다고 아파한다.

열네 해 전 나는 대학입학 시험을 보았다. 그리고 시험 본 날 저녁 집에서 쫓겨났다. 아버지는 내가 국어교육과를 택해서 꿈이 없다고 했다. 아버지는 경영학과나 영문학과를 가야 성공한다고 여겼다. 말다툼이 있었다. 나는 집을 나왔다. 친척 집에서 잠을 자고 면접을 보러 간 나는 왜 교직을 택했느냐는 물음에, 능력 있는 사람들이 기피하는 대우받지 못하는 자리라서, 라고 대답했다. 아무렇게나 되라는 심정이었다. 따뜻하게 웃어준 면접관이 고마웠다.

수능시험이 끝나고 모두들 자기 사연이 있을 테다. 온힘을 들인 수능을 겪은 뒤라 논술준비에 대한 집중이 어려우리라. 머리로는 하고 싶은데 몸에 힘이 없다. 이쪽에선 고전 읽기가 중요하다 한다. 저쪽에선 시사 쟁점 정리가 중요하다고 한다. 고전을 읽으려 하니 책 내용이 어려워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는다. 시사 쟁점을 정리하려 하니, 세상에! 웬 사건이 이리도 많은지, 어떻게 이 많은 일들을 정리할까 막막하다.

지난해 ㅅ대학논술에서는 노동 현실을 물었다. 노동이 인간을 실현하는 과정이라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옛글과 노동자의 기본권을 담은 세계인권선언을 보여준 뒤, 노동자들이 얼마나 비참하게 사는지를 고발하는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 시몬 베유의 ‘노동일기’를 내놓았다.

다른 ㅅ대학에서는 인간역사가 나아갈 방향을 쓴 칸트의 글을 제시하고, 사형에 대해 정당하다는 한국의 헌법재판소 판결문과 사형이 부당하다는 국제사면위원회의 글을 대비시켜 놓았다.

옛것을 익히는 이유는 오늘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다. 글을 읽어도, 세상과 연결지어 사색하지 않으면 실력이 늘지 않는다.

지승호씨가 펴낸 ‘마주치다 눈뜨다’는 한국사회의 쟁점들에 대해 지식인들과 인터뷰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사회 쟁점들을 익히고 논리를 공부하는 데 크게 도움 되는 책이다. 좌우논쟁, 색깔론, 파병논란, 양심적 병역거부, 과거사 청산에 대해 뛰어난 논객들에게 몇 시간 개인지도를 받는 체험을 할 수 있다.

대화에서 설득력이 있으려면 그 논리가 또렷하고 날렵해야 한다. 글은 천천히 사색하며 읽을 수 있지만, 말은 단숨에 자기논리를 증명해야만 힘을 얻는 까닭이다. 그래서 인터뷰 책에는 세련된 논리가 압축되어 잘 정리되어 있다.

사람마다 아파하는 이유가 다른 것은, 세상을 다르게 이해해서다. 내가 대학시험 본 날 남의 집에서 잠을 잔 이유는 아버지와 내가 세상을 다르게 이해한 까닭이다. 논술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연습해서 진실에 다가서려는 노력이다. 그 노력은 우리가 인생을 값지게 살 가능성을 높여준다.

송승훈 경기 광동고 교사·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 회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