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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11월 2일 18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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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취임한 1933년에는 세 집 건너 한 집꼴로 가장(家長)이 실업자였다. 미국인들에게는 저금도, 일자리도, 실업수당도, 희망마저도 없었다. 뉴딜정책은 이처럼 자본주의 역사상 전무한 대공황(大恐慌)에서 살아남기 위한 비상대책이었다.
정부 여당이 ‘한국형 뉴딜’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이상한 일이다. 대통령 말대로라면 우리 경제는 위기가 아니고 작년보다는 올해, 올해보다는 내년이 훨씬 더 나아질 텐데 뉴딜 같은 중환자 소생술이 왜 필요하단 말인가. 속 시원한 설명은 없지만 정부 여당도 내심 큰일 났다 싶은 모양이다.
늦게라도 심각성을 깨달았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데 이번엔 처방이 문제다. ‘대공황을 오히려 연장시켰다’는 경제학적 재평가작업이 한창인 뉴딜이, 증세마저 다른 한국경제에 먹혀들기를 기대하는가.
정부 여당은 대규모 공공사업을 벌여 실업자를 구제하겠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원판 뉴딜과 비슷하다. 독특한 점은 나랏돈만으로는 여유가 없으니 연기금과 민간자본을 대거 동원하겠다는 발상에 있다. 원판 뉴딜이 정부주도형이었다면 한국의 뉴딜은 반관반민(半官半民)형인 셈이다. 설명은 그럴듯하다. 공공성을 살리면서 민간의 창의성과 효율성까지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똑똑한 추남과 머리 나쁜 미녀가 결혼하면 ‘똑똑하고 예쁜 아이’만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닮는 방향이 잘못되면 ‘머리 나쁘고 못생긴 아이’가 나온다. 특히 공익적이지만 방만한 정부와 효율적이지만 이기적인 민간이 결합했을 때의 산물은 대개 후자 쪽이다. 공익성과 효율성 등 우성인자들보다는 방만함과 이기심 등 열성인자들이 더 쉽고 빠르게 화학반응을 일으킨다.
기존 사회간접자본(SOC) 민자사업에 대한 감사원 감사결과를 보자. 법에는 분명 그 대상이 ‘민간 참여가 가능할 정도로 수익성이 있는 사업’이라고 돼 있지만, 실제로는 수익성이 없는 곳에 도로와 터널이 마구 뚫리고 있다. 정부가 최소운영수입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보상기준인 예상교통량만 요령껏 부풀리면 실제통행량이 얼마가 되건 사업이 절로 굴러간다. 그러니 생사를 건 시장경쟁에서 뿜어져 나오는 민간의 창의성과 효율성이 발현될 리 없다.
잔치가 벌어졌으면 누군가 설거지를 해야 한다. 국가재정과 납세자다. 1월 현재 추진 중인 17개 민자사업의 최소운영수익을 보장하기 위해 세금으로 물어줘야 할 돈이 12조597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런 마당에 전문인력도, 투자경험도 부족한 연기금을 동원해 내년에만 8조원을 쏟아 붓게 한다면 결과는 뻔하다. 2008년 300조원에 이를 빚더미 재정의 설거지거리만 잔뜩 쌓일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밝혔듯이 이제 우리 경제는 정부주도형에서 민간주도형으로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반관반민형 뉴딜은 답이 아니다. 온전한 민간주도형 정책만이 외형 세계 11위의 한국경제를 전진하게 할 수 있다.
천광암 논설위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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