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 빼돌리기 換치기 극성…해외불법송금 자금출처 조사

  • 입력 2004년 8월 24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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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5월 서울세관에 불법 외환거래사범으로 적발된 P씨. 그는 한국과 호주에 각각 예금계좌를 개설하고 3년여 동안 무려 2만5000여회에 걸쳐 1300억원 상당을 ‘환(換)치기’ 해오다 검거됐다. 올 들어 7월 말까지 이런 방식의 환치기를 이용한 불법 외환거래금액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무려 10배 이상 급증했다.》

환치기는 정상적인 은행거래보다 수수료도 비싸고 적발될 경우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지만 재산을 해외로 빼돌리거나 불법자금을 세탁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용한다는 게 관계 당국의 분석이다.

변칙, 불법적으로 빠져나간 돈은 해외 현지에서 부동산 매입에 사용되거나 소비되는 사례가 많아 그만큼 국부 유출과 함께 국내 소비 위축을 가져올 것으로 우려된다.

24일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7월 말까지 적발된 환치기를 이용한 불법 외환거래는 305건, 1조1241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건수는 99%, 금액은 무려 1027% 폭증했다.

또 환치기를 포함한 전체 불법 외환거래사범은 1013건, 2조7555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각각 29%, 153% 증가했다.

이는 금액 기준으로 작년 한 해 실적(2조2037억원)을 넘어선 것이고 사상 최고 수준이던 2002년(5조2565억원) 이후 두 번째 규모다.

단속건수 기준으로 볼 때 월평균 144.7건으로 지난해(109.3건)보다 30% 이상 늘어났다.

금융감독원 오갑수(吳甲洙) 부원장은 이날 정례 브리핑을 통해 “불법 외화 유출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파악돼 외환업무 담당 은행에서 관련 자료를 받아 면밀히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 부원장은 “조사과정에서 불법으로 외화를 송금하는 환치기나 사기 등의 혐의가 있어 관세청 경찰청 국세청 등 관련 기관과 공조해 관련자의 신원과 유출 규모를 조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수십만건에 이르는 외화 송금 가운데 1만달러 이상 송금한 것을 모두 조사하고 있다”며 “특히 10만달러 이상의 거액 송금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지난해 이뤄진 불법 송금이 최대 10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부산 등에서 발생한 환치기 사건 등을 전담하기 위해 금감원 직원 일부를 포함한 외환수사팀을 편성해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외국과의 금리차가 줄어든 데다 원화 환율의 변동성도 작아지면서 해외로 재산을 유출하는 사람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연구원 배상근(裵祥根) 연구위원은 “환치기사범의 증가는 국내에 마땅한 투자대상을 찾기 어려운 데다 ‘반(反)부자 정서’ 등이 반영된 결과”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가장 큰 원인은 돈 있는 사람들의 불안감이라는 분석이다. 이들의 불안감이 계속되는 한 어떤 형태로든 자금의 해외 유출은 계속될 것으로 금융전문가들은 예상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돈 있는 사람들이 국내에서 마음 놓고 투자와 소비에 나서게 하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금융당국은 불법 외환거래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관계 법령을 개정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환치기

외국환 거래은행을 통하지 않는 불법 외환거래. 외국환 거래은행을 통해 1만달러(약 1200만원) 이상을 송금하면 국세청에 자동 통보돼 세무당국의 감시를 받게 된다.

황재성기자 jsonhng@donga.com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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