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친북 용공’까지 번지는 과거사 전면전

  • 입력 2004년 8월 19일 19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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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과거사를 조사한다면 친북(親北)과 용공(容共)활동도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이 포함된 친일문제에 초점을 맞추려는 여권을 겨냥한 역공이다. 바로잡아야 할 역사에 친공(親共)이 포함되지 못할 이유가 없으니 한나라당의 맞불은 과거에 집착하는 여권이 자초한 측면도 있다. 과거사 논쟁이 감정싸움으로 변질되지 않을지 우려된다.

여야의 주장대로 진상조사에 돌입하면 정치권은 물론 나라 전체가 망국에서 분단과 전쟁, 독재로 이어진 오욕의 시대로 돌아가 전면전을 치를 수밖에 없다. 양쪽 모두 역사를 바로 세우자며 말들은 그럴듯하게 하지만 속내는 친일과 친공 행위자를 들춰내 상대방을 욕보이고 상처를 입히려는 게 아닌가. 누가 죽고 누가 살아남을지 모르지만 후유증을 어떻게 감당하겠다는 것인가. 허물어져 가는 오늘을 외면하고 과거에 몰입하는 국가와 국민에게 밝은 미래가 찾아올 리 없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먼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집권당은 신기남 전 의장의 거짓말에 대해 반성을 하는 대신 오히려 ‘그의 뜻을 받들어’ 역사 바로 세우기에 나서자며 전의를 다지는 중이다. 한나라당 박 대표는 조사 대상이 될 사람의 딸이다. 그런 정당과 정치인이 개입하면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조사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진다.

부끄러운 과거를 정리해야 한다는 뜻을 살리려면 정치권은 이쯤에서 자제해야 한다. 역사 바로 세우기는 정치의 몫이 될 수 없다. 역사는 한 정권이 재단할 대상이 아니며 정쟁의 소재가 되어서도 안 된다.

여야는 조사 대상과 형식을 놓고 감정적 대립을 계속해 나라를 어지럽게 하는 대신 과거사 정리에서 즉각 손을 떼는 것이 옳다. 냉정을 회복한 뒤에 학계 등 전문가 집단이 역사를 바로잡게 하는 방안을 찾아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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