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핵심인사 겨냥 미확인 고발글 봇물

  • 입력 2004년 8월 19일 15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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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 엉뚱하게도 '과거사 진상 규명 위원회'로 변질되고 있다.

최근 과거사 규명 작업을 강력 추진하고 있는 여당을 겨냥, 가족들의 친일 의혹을 제기하는 '미확인 게시물'들이 봇물처럼 쏟아지면서 여권 핵심 인사들이 '느닷없는' 홍역을 치르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열린우리당 신기남(辛基南) 의원이 한 네티즌의 문제 제기를 발단으로 부친의 일제하 헌병 복무사실이 드러나 끝내 당의장직을 사퇴하면서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특히 여권 '대선 주자군'을 겨냥한 게시물이 일파만파로 퍼져가고 있어, '누군가 조직적으로 이같은 의혹들을 흘리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또 다른 의혹까지 낳고 있다.

최근 며칠사이 급속하게 퍼지고 있는 '미확인 게시물'은 정동영(鄭東泳) 통일부 장관, 김근태(金槿泰) 보건복지부 장관, 이미경(李美卿) 의원등 모두 열린우리당 인사를 겨냥한 것들이다.

네티즌들은 이들의 부친이 일제 시대때 금융조합 서기 또는 선생님등을 지냈다는 사실에 심증을 곁들여 '친일'을 거론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해당 인사 측근들은 모두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다.

저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일부 네티즌들이 객관적 기록으로 남겨진 직업과 경력 관계를 억지로 꿰맞춰 '소설을 쓰고 있다'는 것.

정 장관의 한 측근은 19일 동아닷컴과의 전화 통화에서 "이같은 게시물이 인터넷에 돌고 있는 걸 장관도 알고 계신다"며 "그러나 특별히 언급하길 꺼려하신다"고 말했다.

이 측근은 "정 장관 부친의 경력 자체는 사실이지만, 친일에 대한 부분은 어이가 없다"면서 "그렇게 따지면 그 당시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이 친일파가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또 다른 여권의 '대선주자'인 김 장관측도 황당해 하는 건 마찬가지다.

김 장관의 한 측근은 19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교편을 잡았다는 것만으로 친일파라니,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한 측근은 "이러한 흑색 소문은 4·15 총선 이전부터 흘러나온 얘기"라며 "연좌제식, 마녀사냥식으로 이같은 루머가 퍼지는 것 자체가 진정한 과거사 규명의 긍정적 역할을 저해하고 있다"고 잘라말했다.

이른바 '대권 주자군'은 아니지만, 열린우리당 이미경(李美卿) 의원의 부친에 대한 의혹도 인터넷을 떠돌고 있다.

"이미경 의원의 부친 이봉권 씨도 신기남 의원의 부친처럼 일제 때 헌병이었다"며 "해방 이후 세무공무원으로 변신했다는 사실은 전직 세관 직원들 모두가 알고 있다"는 것.

특히 이 게시물엔 "심정구 한나라당 전 의원이 이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명시돼 있어, 또 다른 궁금증을 낳고 있다.

그러나 15대 국회의원을 지낸 심정구(沈晶求) 씨는 19일 동아닷컴과의 전화 통화에서 "이미경 의원의 부친과 우리 큰형님이 절친한 친구였던 건 사실"이라며 "그러나 이 의원의 부친은 친일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고 소문을 일축했다.

심 씨는 "이 의원 부친께서 일제 때 일본에서 공부하다가 현지 헌병으로 징용됐다는 얘기는 들은 적 있다"며 "그게 친일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말했다.

국회 문화관광위원장인 이 의원은 현재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단을 격려하기 위해 그리스 아테네에 가 있다.

이 의원의 한 측근은 "이 의원 부친께선 국세청에서 오랫동안 근무하신 걸로 들었다"며 "일제 때 한국에 계시지 않았던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열린우리당측은 최근 잇따르고 있는, 여권 인사를 겨냥한 듯한 게시물들에 대해 "그다지 언급할 가치가 없다"며 시큰둥한 반응이다.

이평수(李枰秀) 부대변인은 "과거사를 규명하자는 건 해묵은 국민 갈등을 치유함으로써 국민 통합 계기를 마련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는 것"이라며, 인터넷에서 벌어지고 있는 '마녀사냥식' 의혹 제기에 대해 경계했다.

한나라당 역시 네티즌들의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전여옥(田麗玉) 대변인은 "여당 인사들에 관한 의혹 글이 많은 것에 대해선 우리도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다"면서도 "인터넷식 연좌제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고 경계했다.

전 대변인은 "현재 인터넷에 도는 얘기들은 모두 검증되지 않은 것들"이라며 "이것들이 선동적, 포퓰리즘적으로 변하면서 엉뚱한 불똥을 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재준 기자 zz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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