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228>卷四. 흙먼지 말아 일으키며

  • 입력 2004년 8월 11일 18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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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대쪽을 쪼개듯(13)

함양 성안에 갇힌 조분(趙賁)과 내사(內史) 보(保)는 팽성에 거듭 사람을 보내 위급을 알리게 하는 한편 성안 군민(軍民)을 다잡아 버텨보려 했다. 그런데 알 수 없는 일은 한군의 움직임이었다. 몇 겹으로 굳게 성을 에워싸고 있을 뿐 사흘이 지나도 화살 한대 쏘아오지 않았다.

그런 한신을 이상하게 여긴 것은 성안의 조분과 내사 보뿐만이 아니었다. 한왕 유방도 하루 이틀은 한신이 하는 대로 보고만 있었으나 사흘이 되자 알 수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옹왕 장함이 아직 폐구에 그대로 버티고 있는데 대장군은 어찌하여 이 함양에서 날을 끌고 있으시오?”

그러자 한신이 가만히 웃으며 말했다.

“가장 귀한 것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군사 한명 잃지 않고 함양성을 얻고자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조분이나 내사 보는 호락호락 항복할 위인들이 아니잖소? 쓸데없이 여기서 머뭇거리다가 폐구의 일을 그르치면 실로 난감하지 않겠소?”

“대왕께서는 벌써 잊으셨습니까? 처음 패현(沛縣)이 어떻게 대왕을 맞았습니까?”

그 물음에 비로소 한왕은 한신이 기다리는 게 무엇인지 알았으나, 아무래도 될성부르지 않게 보이는지 여전히 밝지 못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럼 누가 성안에서 조분과 내사 보의 목이라도 베어 우리에게 바친단 말이오?”

“기다려 보십시오. 오늘 밤을 넘기지 않을 것입니다.”

한신이 무얼 믿는지 그렇게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러자 한왕도 더는 따져 묻지 않았으나 별로 한신의 말을 믿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날 밤이었다. 삼경 무렵 하여 성안에서 불길과 함성이 일더니 갑자기 서문 성루(城樓)가 횃불로 환해졌다. 한왕과 한신이 머무는 진채 쪽이었다. 한왕과 한신이 성루 쪽으로 다가가 바라보자 한 장수가 난간으로 나와 소리쳤다.

“나는 초나라에서 기장(騎將) 노릇을 여마동(呂馬童)이요. 한왕께서는 어디 계시오? 드릴 말씀이 있소!”

“나는 한나라 대장군 한신이다. 내가 대왕께 아뢸 테니 무엇이든 내게 말하라.”

여마동을 아는 한신이 한왕을 대신해 나서며 그렇게 받았다. 한왕이 너무 가까이서 적 앞에 드러나는 것이 걱정된 듯했다. 그러자 여마동이 무엇인가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문루(門樓)아래 던지며 소리쳤다.

“여기 조분과 내사 보의 목이 있습니다. 이들을 아는 이들에게 물어보시고 틀림없으면 저희들이 열어둔 성문으로 대왕과 함께 드십시오.”

한신이 문득 목소리를 가다듬어 말했다.

“장군이라면 내가 아오. 나는 바로 패왕의 군막에서 집극랑(執戟郎)으로 있던 바로 그 한신이오! 장군은 초나라 장수들 중에서도 대세를 보는 눈이 밝고 일의 기미를 꿰뚫어 볼 줄 아는 분이셨소. 나는 장군의 항복을 믿소.”

그리고는 바로 성안으로 군사를 몰고 들어갈 기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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