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환상소설첩 근대편, 동시대편’…또다른 환상

  • 입력 2004년 7월 16일 17시 30분


◇환상소설첩 근대편, 동시대편/방민호 엮음/330, 316쪽 각 권 9700원 향연

환상소설을 읽을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이 아이러니컬하게도 ‘환상에 대한 환상’이라면 어떨까. 최소한 한국소설에서, 그것도 광복 이전의 소설에서 제대로 된 환상을 기대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환상소설첩-한국문학의 환과 몽’의 ‘근대편’에 실린 11편의 소설 속에 ‘해리포터’가 ‘이상한 나라’에서 ‘절대반지’를 없애는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 선집의 엮은이도 인정하고 있듯이 환상소설이라기보다는 ‘환상이 있는 소설’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9편의 1990년대 환상소설이 실린 ‘동시대편’의 환상도 더 강력해지기는 했지만 가상의 마을 ‘마콘도’를 세울 정도는 아니다.

대체로 환상소설은 이해할 수 없는 초자연적이거나 비정상적인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때문에 괴력난신(怪力亂神)을 거부하고 술이부작(述而不作)을 존중했던 유교적 전통사회에서는 황당무계한 저급문학으로 치부되었다. 외세에 시달렸던 근대에는 서구적 리얼리즘에 눌려 서자나 탕아처럼 소외되었다. 거부하기에는 현실(아버지)이 너무 강했다. 하지만 ‘현실과 좌우만 바뀐 등가물’로서 환상이 재인식되자 그에 대한 복권이 화려하게 이루어진다. 그래서 엮은이가 지적하고 있듯이 환상은 “새로운 리얼리티 발견의 가능성을 심화 확장시키는 매개”로 기능하게 된다.

우리는 환상소설을 통해 폭력적 현실을 인식(현상윤 ‘핍박’, 장정일 ‘펠리컨’)하거나, 억눌렸던 원망이나 욕망을 표현(이광수 ‘꿈’, 이평재 ‘푸른 고리문어와의 섹스’)할 수도 있고, 제도로부터의 일탈(최서해 ‘기아와 살육’, 오수연 ‘벌레’)을 꾀할 수도 있다. 이상(異狀) 현실을 문제 삼으면서 이상(理想) 현실을 추구하기에 광기, 분신, 변신, 공상, 꿈, 유령 등의 모티프를 주로 경험하기도 한다.

물론 현실과의 이런 친연성 때문에 환상소설로서의 정체성이나 경계가 모호한 것이 한국 환상소설의 특징이기도 하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환상은 또 다른 현실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이 선집에 실린 환상소설 속의 환상은 마술적이기보다는 고딕적이다. 낮꿈보다는 밤꿈에 더 가깝다. 자유로운 상상력에 의지하기보다는 상징적 알레고리에 의지하는 편이기도 하다. ‘믿거나 말거나’가 아니라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 더 몰두한다. 현실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 하지만 짖을 일이 있음을 알려는 준다. 이를 통해 이 선집은 환상소설이 단순히 도피나 유희를 위한 주변 장르가 아님을 진지하게 알려준다. 악몽도 꿈이니까. 주로 죄인이 악몽을 꾸니까. 괴물을 만들어낸 사람이 바로 괴물이니까. 어차피 “인생은 꿈이다. 그리고 인생이 좇고 있는 것도 꿈이다.”(박태원 ‘적멸’) 그러니 다시, 환상소설을 읽을 때 버려야 할 당연한 것은 환상 그 자체가 된다. 환상의 반대말이 ‘현실’이 아니라 ‘금기’라면 더욱 그렇다.

김미현 이화여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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