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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7월 16일 17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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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나를 남부의 고향으로, 복숭아 과수원에서 장난치던 어린 시절로 둥실둥실 띄워 보낸다.…가버린 여름과 멀리서 익어가는 곡식의 달콤한 기억을 일깨우는….”
무엇이 떠오르는가. 기울어가는 가을 오후의 햇살, 황금 밀밭을 스치는 바람소리가 느껴지는가. 그러나 실제 이 문장을 쓴 사람은 햇살이나 바람소리를 느끼지 못하는 이였다. 그가 기억한 것은 오직 과일향기. 그러나 글쓴이 헬렌 켈러는 그것만으로도 이 감미로운 풍광을 묘사해 냈다.
수억년 동안 인류는 생존을 위해 감각을 개발해 왔다. 그리고 이제는 그 감각을 위해 생존한다. 진미를 맛보고 황홀한 경치와 화음에 도취하며, 육체의 열락을 맛보지 못한다면 삶은 의미 없는 것이 되었다.
미국 코넬대 영문학 교수인 저자는 온갖 장르의 예술과 민속학, 생리학에서 물리학에 이르는 ‘감각의 지식’을 이 책에 쏟아 넣었다. 박물학(博物學)이라는 제목에 무색함이 없다.
● 논리를 배반하는 코
셰익스피어는 ‘제비꽃’이라는 시에서 ‘달콤한 도적이여, 너는 그 달콤함을 어디서 훔쳤느냐, 내 애인의 숨결에서가 아니라면?’이라고 읊었다. 나폴레옹의 아내 조세핀이 애용한 향기도 제비꽃 향이었다. 조세핀이 죽자 나폴레옹은 무덤가에 제비꽃을 심었고, 꽃이 자란 뒤에는 꽃을 따서 말린 뒤 목걸이에 넣어 걸고 다녔다.
그러나 이토록 우리 마음을 움직이는 냄새는 언어로 표현하기 힘들다. 재료의 이름을 따서 ‘무엇의 냄새’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재료를 살펴보면 우리가 특정 향기에 강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더욱 수수께끼다. 고급 향료인 용연향(龍涎香)은 향고래가 오징어를 먹은 뒤 창자에 쌓이는 기름찌꺼기에서 나온다.
향기는 종종 죄와 금기의 느낌을 나타낸다. 푸아종(독약) 오퓸(아편) 옵세션(강박) 타부(금기)…. 이유가 뭘까.
● ‘나’를 알려주는 촉각
‘촉각’의 개념은 단지 손발로 느끼는 것만이 아니라 위치감과 공간감의 대부분을 포함한다. 촉각은 ‘나’의 생명이 깊이와 모양을 갖추고 있으며 3차원적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러나 촉각은 솔직하지 않다. 운동선수들은 흔히 휴식시간이나 경기가 끝난 후에야 심하게 다친 것을 알아챈다. 몸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끼려면 온도를 2∼3도 높여야 하지만 서늘해짐을 느끼려면 0.5도에서 1도만 낮추면 된다.
우리가 촉각을 중시하는 것은 무엇보다 불쾌감, 즉 고통과 가장 크게 관련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곧잘 육체를 한계 이상으로 밀어붙이는 행위에 매혹된다. 1980년대 캘리포니아에서 ‘뜨거운 석탄 밟기’가 유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 그런대로 논리적인 귀
언어는 청각을 통해 전달된다.
영어의 ‘absurd(불합리한)’는 ‘귀 기울이지 못함’을 뜻하는 아랍어에서 나왔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성서 내용도 ‘청각=논리’의 연관성을 지목한다. 음악의 논리성은 해석되지 않기에 때로 더욱 신비롭다.
후천적으로 청각을 상실한 사람은 매우 많은 소리를 ‘듣는다’. 나이 들어 시력을 잃은 사람이 추억 속에서나 사물의 형태를 느끼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 날갯짓하는 새를 보면 실제로 퍼덕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느끼는 것이다. 만일 15Hz 이하의 낮은 소리를 우리가 들을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내 몸속에서 나는 소리에 무척 신경이 쓰일 것이다.
● 내 감수성의 7할, 눈
우리 몸의 감각 수용기 중 70%는 눈에 몰려 있다. 키스할 때 왜 눈을 감을까. 70%의 감각을 제거한 뒤 남은 감각을 극대화하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는 ‘첫귀’나 ‘첫손길’이 아닌 ‘첫눈’에 이성에게 반한다. 뇌는 시각 정보를 바탕으로 수초 내에 적합한 이성을 판별해 내기 때문이다. 동공 크기가 갖가지인 여성의 사진을 보였을 때 동공이 크게 풀린 여성의 사진을 본 남자의 동공도 풀렸다.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상대방의 동공 크기를 ‘당신에게 끌렸다’는 지표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위대한 화가들의 작품은 때로 그들의 시각 이상을 알려준다. 반 고흐 그림에 나타나는 빛무리는 그가 물감 희석제의 독성 때문에 눈에 손상을 입었음을 증명한다.
이 책이 주는 유쾌함은 ‘잡학’이 폭죽처럼 터지는 지적 포만감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삶을 뜨겁게 달구고 경이감에 불을 붙여야 한다’는 저자의 격려가 마음을 설레게 한다.
“삶과의 가장 멋진 연애는 가능한 한 다양하게 사는 것이다. 힘이 넘치는 말(馬)처럼 호기심을 간직하고 매일 햇빛이 비치는 산등성이를 전속력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인생은 신비에서 시작되었고 신비로 끝날 테지만, 그 사이에는 얼마나 거칠고 아름다운 땅이 놓여 있는가.”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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