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20년 종합월간지 ‘개벽’ 창간

  • 입력 2004년 6월 24일 19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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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을 열며 당신을 열며 과거를 열며 현재를 열며 미래를 열며….”

1920년 6월 25일. ‘개벽(開闢)’이 창간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 종합지는 동학(東學)의 ‘후천개벽사상’에서 제호를 땄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이 고스란히 스몄다.

‘민중의 잡지’는 검열과 탄압의 피를 먹고 자란다.

3·1만세운동 직후 일제의 문화통치라는 ‘사탕발림’ 속에서 탄생했으나 그 쓰고 매운 소리는 총독부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다.

창간호는 “총독의 비위에 거슬린다” 하여 압수되었고, 이틀 뒤 호외(號外)를 발행하였으나 또다시 압수된다. 그러나 그 사흘 뒤에 또 임시호를 발행했으니!

‘북풍한설(北風寒雪) 가마귀 집 귀한 줄 깨닫고 가옥가옥(家屋家屋) 우누나/ 유소불거(有巢不居) 갈 데 없는 저 까치 집 잃음을 부끄러워 가치가치(可恥可恥) 짓누나….’

창간호에 실렸다 끝내 삭제된 김기전의 시(詩)는 노골적으로 일제를 겨냥하고 있었다.

압수 34회, 정간 1회, 벌금 1회! 1926년 8월 통권 72호를 끝으로 폐간될 때까지 ‘개벽’의 시련은 계속된다.

잡지는 한국문학의 터전이었다. 전체 지면의 3분의 1을 문예란에 할애해 문학사상 기념비적인 작품들을 쏟아냈다.

김억 김소월 김동인 김동환 나도향 변영로 박종화 이상화 염상섭 현진건…. 이들의 출세작과 문제작이 여기서 빛을 봤다. ‘빈처’가 그렇고 ‘표본실의 청개구리’가 그렇고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가 또 그랬다.

특히나 소월은 개벽에서 태어나 개벽에서 자란 시인이었다.

잡지는 좌파(左派)운동의 거점이자 구심점이었다. “인민의 소리는 개벽으로 말미암아 더욱 커지고 넓어지고 철저하야지리라.”

김기진 박영희 이기영 최서해 송영 조명희 김형원 이익상…. 1900년대 계급주의문학을 지향하던 신경향파(新傾向派) 작가들이 용출(湧出)했다. 카프(KAPF)의 산실이었다.

좌익(左翼) 사상을 소개하고 논의를 지핀 것도 이 잡지다. “다량(多量)의 인도주의와 자유주의 위에 사회주의를 가미했다.”

‘개벽’은 그 이름 그대로 새 세상을 열고자 했다.

때는 암흑의 ‘선천(先天)시대’에서 광명의 ‘후천(後天)시대’로 넘어가는 ‘말세(末世)’였으되!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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