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명건/相生없는 국회 자리다툼

  • 입력 2004년 6월 14일 18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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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17대 국회가 개원한 지 열흘이 지나도록 원 구성을 하지 못하고 있다. 쟁점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상임위원회 전환과 상임위원장 배분 문제다.

열린우리당은 예결위의 상임위 전환 문제를 조건 없이 국회개혁특위에서 다루자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한나라당은 상임위 전환 시한을 8월 말로 정한 뒤 세부 내용을 논의하자는 입장이다. 여기에다 상임위원장 배분을 둘러싸고도 열린우리당은 법사위 문광위 정보위 운영위 예결위원장 등 5개 주요 상임위원장은 내놓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나라당도 법사위원장만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양측이 내세우는 협상논리만 놓고 보면 어느 쪽이 옳고 어느 쪽이 그른지를 가리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문제는 협상과정에서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 상대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 때문에 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열린우리당 이종걸(李鍾杰) 원내수석부대표는 최근 기자회견을 갖고 “한나라당이 국회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열린우리당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나라당이 세상 변한 것을 모른다’는 불신의 표시였다.

이에 한나라당 남경필(南景弼) 원내수석부대표는 “열린우리당은 개혁이 자신들의 전유물이라는 착각에 빠져 주요 상임위원장 자리를 독식하려 한다”고 반박했다.

이처럼 두 당이 감정싸움으로 원 구성도 못하고 시간을 보내는 사이 수도 이전, 주한미군 철수, 불량만두 파동 등 국회가 정부에 대한 감시 감독을 통해 해결해야 할 시급한 현안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지난달 3일 열린우리당 정동영(鄭東泳) 당시 의장과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대표가 만나 구시대의 종식을 다짐하며 맺은 ‘상생(相生)의 정치 협약’은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휴지 조각이 될 운명이다.

‘말 많은 집은 장맛도 쓰다’는 속담이 있다. 두 당은 당리당략에 치우쳐 ‘네 탓’ 공방으로 시간을 허비하기보다 하루 빨리 국회를 정상화해 국민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국민은 이제 정치권의 정쟁(政爭)에 너무 지쳤다.

이명건 정치부기자 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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