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이필렬/햇빛과 바람에서 희망찾기

  • 입력 2004년 6월 11일 18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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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위기’에서 벗어나려는 과학기술인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인간배아를 복제한 생명공학자를 한껏 띄워서 노벨상까지 받게 만들겠다는 운동도 이런 노력의 연장이다. 생명공학에 모두들 지대한 관심을 보이니, 생명공학이 이공계 살리기의 기대주가 될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생명공학에 모든 희망을 거는 것은 너무 큰 모험이다. 생명공학은 적이 많다. 윤리적으로 허약한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사람의 난세포를 주무르고, 복제 배아를 만들었다가 폐기시켜 사망에 이르게 하고, 사람의 세포와 소의 난자를 섞는 일이 현대 생명공학에서 일어난다. 이런 약점 때문에 한껏 올라간 생명공학이 언제 바닥으로 추락할지 모른다.

윤리적으로도 탄탄한 다른 기대주는 없을까? 나는 우리나라 과학기술인들에게 이공계를 살릴 주역으로 재생가능 에너지기술을 선택하라고 권하고 싶다. 이에 대해서는 아무도 윤리적인 비난을 하지 않는다. 화석연료와 원자력을 이용하는 에너지기술은 미래 세대를 생각하는 지속가능성과 윤리의 관점에서는 비난받을 것들이다. 이는 현재의 번영을 위해 미래를 파괴하는 기술이고, 부로 가득한 거대 도시와 거대 빌딩의 풍요를 위해 외딴 농어촌을 망가뜨리는 기술이다.

반면 태양빛이나 바람을 이용하는 기술은 모든 사람에게 득이 되는 상생의 기술이다. 에너지를 고갈시키지도, 기후변화를 일으키지도, 핵폐기물을 내놓지도 않기 때문이다. 미래 세대나 외딴 지역 사람들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다.

재생가능 에너지기술은 화해의 기술이기도 하다. 석유 의존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에 국제적인 갈등과 전쟁의 주요 원인을 제거해 준다. 지구상의 모든 나라가 햇빛과 바람에서 에너지를 얻는다면, 이라크전쟁과 같은 ‘추악한 전쟁’이 일어날 리 없다. 그러니 파병 때문에 골치를 썩일 이유도 없다. 윤리적으로는 흠잡을 데 없는 것이 바로 재생가능 에너지기술인 것이다.

그러나 이 기술도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여기저기서 많은 공격을 받는다. 거대한 원자력발전소만 둘러본 사람들에게는 햇빛이나 바람을 이용해서 에너지를 얻는다는 발상은 아이들 장난처럼 보이는 것 같다. 그것으로는 눈곱만큼의 에너지밖에 얻지 못할 테니 꿈꾸지 말고 현실을 직시하라고 충고한다. 훨씬 싼 원자력이나 화석연료가 있는데, 그런 비싼 기술로 사람들을 현혹하지 말라는 비난도 있다.

우리 눈에 드러나는 것만 갖고 보면 비싼 것은 사실이다. 변덕이 심한 햇빛과 바람이 줄 수 있는 에너지가 얼마 안 될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빙산이 그렇듯이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화석연료와 원자력은 잘 드러나지 않는 큰 비용을 숨기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비용, 대기오염으로 인한 비용, 원자력 사고와 핵폐기물 등이 모두 숨겨진 비용이다. 이에 비하면 햇빛이나 바람을 이용하는 기술은 감추고 있는 비용이 없다.

원자력기술과 생명공학기술은 감추는 것이 많다. 원자력기술은 기본적으로 위험하고, 생명공학기술도 윤리적 비난에 휩싸일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투명하게 드러내기가 어렵다. 반면 재생가능 에너지기술은 위험하지도 않고 비윤리적인 면도 없기 때문에 투명해질 수 있다. 과학기술인들이 이러한 기술에서 희망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이필렬 방송대 교수·과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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