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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4월 15일 23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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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5대 민의원에 출마해 정계에 진출한 이 당선자는 6대 때부터 11, 14대를 제외하고 그동안 모두 11차례 총선에 출마해 세번 금배지를 달았다. 이번 당선으로 4선이다. 본래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의 오른팔로 동교동계의 2인자였으나 오랫동안 원내진입을 못하는 바람에 다소 핵심에서 멀어졌다.
9대 국회에 처음 진출하기까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처남인 고 육인수(陸寅修·당시 공화당) 의원 등에게 밀려 4차례 낙선의 고배를 마셨고, 유신정권이 막을 내린 11대에는 신군부 정치규제에 묶여 출마자체가 무산됐다.
12대 이후 신군부 핵심인물인 박준병(朴俊炳·당시 민정당) 의원을 만나 고전하던 그는 13대 때 서울 영동포을로 지역구를 옮겨 김명섭(金明燮·당시 민정당) 의원과 재검표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지만 석패했다.
또 여당(새천년민주당) 후보로 나선 16대 선거에서는 심규철(沈揆喆·한나라당) 의원과 맞붙어 근소한 차로 고배를 마셨다.
열린우리당 후보선정 과정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총선연대 낙천 낙선자 명단에 올라 당내 공직자격심사위로부터 ‘공천배제’라는 설움을 겪은 뒤 상임중앙위원회 재심의를 거쳐 가까스로 구제된 뒤 경선을 치르는 등 우여곡절 끝에 겨우 출마할 수 있었다.
이 당선자는 “총선 기간 중에도 옥천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외가 바람’이 불어 선거막판에는 한나라당 후보가 턱밑까지 추격해 왔지만 유권자들의 표심은 ‘탄핵심판과 부패정치 청산’이라는 대의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옥천=장기우기자 straw8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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