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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4월 9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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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보일배의 요체는 ‘하심(下心)’이라고 한다. 자신을 낮추고 남을 위한다는 마음이 있어야 가능하고 또 그런 마음을 얻기 위해서 한다는 것이다. 성철(性徹) 스님은 생전에 ‘하심’에 대해 “좋고 영광스러운 것은 항상 남에게 미루고 남부끄럽고 욕된 것은 남모르게 내가 뒤집어쓰는 것이 수도인의 행동”이라고 했다. 또 “낮은 자리에 앉고 서며 끝에서 수행하여 남보다 앞서지 않는다. 언제든지 고되고 천한 일은 자기가 한다”고도 했다.
▷지난해 봄 수경(收耕) 스님은 새만금을 살리기 위해 전북 부안에서 서울시청 앞까지 320km가 넘는 길을 65일 동안 삼보일배 한 후 “삼보일배는 자신의 마음보를 고치는 운동”이라고 했다.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외부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자신의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의 결과로 생각하고 한 걸음 떼어놓을 때마다 참회하고, 세 걸음 걷고 스스로 몸을 낮춤으로써 자신을 비우겠다는 의지를 다지자는 것”이라는 얘기다.
▷총선을 앞두고 삼보일배 행진이 잦다. 추미애 민주당 선대위원장이 광주에서 탄핵안 가결에 대한 사죄의 삼보일배를 하더니 이번에는 열린우리당 대구지역 후보 부인 9명이 도심의 한 백화점에서 유서 깊은 국채보상기념공원까지 1km를 세 걸음 걷고 한 번 절하며 갔다. 명분은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싹쓸이를 막아 달라’는 것.
▷이런 삼보일배에 성철 스님의 ‘하심’이 얼마나 살아있는지 모르겠다. 고행을 자처함으로써 민심을 되돌리고 지역구도도 타파해보겠다는 것을 나쁘다고 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결국은 표를 달라는 것이니 이기심의 발로가 아니라고 부정하기 또한 어렵다. 불교계에선 벌써 삼보일배의 왜곡을 우려하는 소리가 높다. 불가의 저 유명한 화두 “이 뭐꼬?”를 되뇌고 싶은 심정이다.
이재호 논설위원 leej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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