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부형권/金추기경 '이유없는 수난'

  • 입력 2004년 2월 2일 18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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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기경님, 좋은 말씀 한마디 해 주십시오.”(열린우리당 이부영·李富榮 상임중앙위원)

“좋은 말씀은 여러분이 다하고 다니시던데요.”(김수환·金壽煥 추기경)

“저희 얘기랑 추기경님 말씀이 같을 수 있습니까.”(이 상임위원)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혜화동성당 사제관에서 1시간가량 진행된 김 추기경과 우리당 정동영(鄭東泳) 의장 등 당 지도부의 면담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날 김 추기경의 관권선거 시비 등에 대한 솔직한 지적에 정 의장 등은 때로 반론을 펴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토론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김 추기경이 “나라의 전체적 경향이 반미친북으로 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하자 신기남(辛基南) 상임중앙위원은 “자주적으로 가자는 것이다”며 반박했고, 이 상임위원도 “젊은이들에게 ‘너 북한 가서 살래’ 하면 아무도 안 갈 것이다”며 거들었다.

그러자 김 추기경은 “나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이의가 없지 않다. 미국 입국할 때 지문 찍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래도 감정적 반미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추기경과 열린우리당 지도부간의 토론은 어떤 측면에서는 건강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정작 김 추기경은 지금 사이버공간에서 ‘수난’을 당하고 있다. 한 인터넷매체는 “김 추기경의 ‘반미친북 발언’이 민족의 내일에 심각한 걸림돌로 불거졌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열린우리당의 한 개혁 강경파 의원도 사석에서 “김 추기경을 다시는 만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심지어 일부 열린우리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김 추기경에 대한 노골적인 폄훼 분위기까지 감지된다.

문제는 이런 분위기가 김 추기경의 발언 진의는 물론 당일의 토론 분위기와도 동떨어진 것이란 점이다.

김 추기경이 면담 말미에 “나처럼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참고해 달라”고 당부하자 정 의장은 “추기경님께서 나중에 ‘걱정했었는데 괜찮더라’고 말씀하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화답했다. 이 장면을 상기하면서 ‘거드는’ 사람들이 문제라는 느낌을 금할 수 없다.

부형권 정치부기자 boo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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