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스물셋 그리고 마흔여섯'…딸 감싸주는 母情

  • 입력 2004년 1월 30일 17시 28분


코멘트
◇스물셋 그리고 마흔여섯/이순원 지음/303쪽 9500원 이가서

작가 이순원의 소설에서 ‘누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어렵지 않다. 운명의 질곡에 시달리거나 내밀한 상흔을 감추고 있는 여인들의 나지막한 이야기들은 종종 1인칭 화자의 음성으로 전달된다.

작가는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고향 강원 강릉 ‘여자애들’과의 각별하고 끈끈한 정과 오랜 대화를 자신의 ‘은밀한 재산’으로 든다. 그것이 남성 작가로서 여성 화자를 내세우면서도 어색함 없이 독자들과 공감의 팽팽한 끈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라는 것.

새 작품의 주인공은 제목 그대로 두 배의 나이 차를 가진 모녀. 소설은 엄마와 딸의 시선을 오가며 진행된다. 딸이 고3이던 시절, 엄마는 딸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다. 함께 병원에 가 아이를 지운 뒤, 엄마는 딸에게 이를 둘 사이의 비밀로만 묻어두기로 약속하고 젊은 시절의 비밀 이야기를 들려준다. 비밀 하나씩을 교환했으니 서로 영원히 드러내지 말자는 뜻이었을까.

그러나 몇 년 지나 더욱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난다. 딸아이의 임신은, 당시 고백했던 사연을 훨씬 뛰어넘는, 세상이 용인할 수 없는 사랑의 결과였던 것. 엄마는 변함없는 모정으로 딸을 감싸 안고 자칫 파멸로만 치달을 것 같던 위기는 어렵사리나마 수습된다.

소설은 이 시점에서부터도 여러 달 지난 어느 저녁의 일로 시작된다. 엄마가 1억원이라는 큰돈을 아빠 몰래 어딘가에 썼다는 사실을 아빠가 알게 된 것. 아빠는 집요하게 돈의 행방을 캐묻고, 엄마는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는다.

엄마는 딸에게 전화를 걸어 “잘 있으니 걱정 말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엄마의 가출이 몇 달 전 고백한 딸의 ‘금지된 사랑’과 관계있는 걸까. 아니면 엄마에게 자기만의 또 다른 비밀이 숨어 있는 것인지….

작가는 이 작품에서 삶 도처에 널린 ‘위태함’과 ‘금기의 가시밭길’을 드러내려 했다고 말한다. “현재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위태롭고 버겁다. 그것이 지금 딸의 시간이다.”

위태롭고 버거운 시간을 통과한 뒤 그 힘겨움까지도 따스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바로 ‘감싸 안음’과 ‘공감’의 힘이라고 작가는 이야기하는 듯하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