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FA유랑자' 유지현의 추운 겨울

  • 입력 2004년 1월 5일 18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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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의 재간둥이 유지현. 자유계약선수 중 유일하게 팀을 정하지 못한 그는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요즘 중학생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며 재기를 노리고 있다. -박주일기자
프로야구의 재간둥이 유지현. 자유계약선수 중 유일하게 팀을 정하지 못한 그는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요즘 중학생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며 재기를 노리고 있다. -박주일기자
춥다. 날씨가 추운 게 아니라 마음이 추우니 더 뼈저리다.

올해로 내 나이 33세. 이제 야구의 깊이를 알고 운동을 할 나이인데 남들은 벌써 ‘퇴물’ 취급을 하니 서럽다. 야구선수로 ‘대박’의 기회인 자유계약선수(FA)로 풀렸지만 나 혼자 외톨이로 남았다.

FA를 유보하고 1년 계약만 하자던 LG는 아직 연락이 없다. FA가 되기 전 LG가 보여준 협상태도를 잊을 수 없다. ‘우리 입장은 이렇게 정해졌으니 알아서 하라?’ 아 다르고 어 다른 게 사람 마음이다. 넌 FA 돼도 갈 팀이 없으니 FA 선언하지 말고 1년만 뛰라는 얘기 아닌가. 편법을 써서 그렇게 계약했다고 치자. 내가 후배들 얼굴 어떻게 보겠는가. 내 자존심이 도무지 허락하지 않는 요구조건이었다.

LG는 아마시절 내가 정말 뛰고 싶던 팀. 줄무늬 유니폼을 입고 플레이하는 동안 정말 행복했다. 어디 나가면 ‘난 진짜로 LG팬이에요’라고 자랑하고 다녔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이렇게 홀대받고 다시 LG에서 뛸 생각은 없다.

물론 지난해 데뷔 이후 최악의 성적을 낸 건 사실이다. 하지만 1년 성적으로 내 야구인생을 평가받는 건 너무 억울하다. 충암초교 4학년 때부터 23년 동안 야구를 해 왔다. 그 23년을 단 1년으로 평가받는다고? 내가 요즘 훈련하고 있는 곳은 서울 동작구 대방동 집 근처 강남중 운동장. 오후 2시경부터 후배들과 운동을 같이 한다.

중학교 선수들과 운동하는 것은 처음이지만 많은 도움을 얻는다. 수비훈련도 같이 하고 티배팅도 하고 운동장도 같이 달린다. 창피하기보다 이 아이들 덕에 훈련할 수 있으니 오히려 고맙다.

훈련을 아침부터 못하는 건 규민이 때문이다. 규민이는 지난해 11월 23일 태어난 소중한 첫아들. 그런데 이놈이 밤잠이 없어 집사람(이미선·30)이 고생을 많이 한다. 나 몰라라 할 수도 없고 밤새 아이 달래다 보니 모자란 잠을 아침에 보충한다. 나 참, 아이도 태어났으니 이제 분유값도 많이 벌어야 되는데…. 기저귀 값이 그렇게 비싼 줄 처음 알았다.

새해엔 모든 일이 잘 풀릴 거라고 본다. 어느 팀으로 가든 야구는 다시 할 것이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 유지현이 안 죽었다는 걸 팬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팬들이 안타까운 마음에 한소리 한다. 94년 ‘신인 삼총사’로 우승을 이끌었던 서용빈 유지현 김재현이 다 잘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아쉽다고. 하지만 난 우리 셋이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을 헤치고 다시 근사하게 야구할 거라고 믿는다.

▽LG 유성민 단장=조만간 유지현과 만나 본인 생각을 알아볼 생각이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 얘기도 듣고 주위 의견을 많이 참고해 협상하겠다. 다시 만나더라도 지난해 우리가 제시한 조건에서 크게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다년 계약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 선수들도 이제 자기 주장만 하지 말고 구단 사정을 파악하고 고마워할 줄도 알아야 한다.

정리=김상수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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