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성원/만신창이 정치개혁법

  • 입력 2003년 12월 24일 18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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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자랑스럽다.”(김근태·金槿泰 원내대표)

“당이 생긴 이래 제일 잘한 일이라는 평가도 있다.”(정동영·鄭東泳 의원)

24일 열린우리당 의원총회장. 전날 밤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 야권3당이 마련한 지역구 16석 증원을 뼈대로 한 다수안을 육탄 저지한 ‘전과’를 자찬하는 발언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한 의원은 “소년이 기차를 가로막았다면 현행법을 위반한 것이지만, 앞에 선로가 끊겨 있어 모든 승객이 죽게 될 상황이었다면 사정이 다르다”며 “언론이 여야를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잘못이다”고 강변하기도 했다.

사실 야권3당이 표결로 밀어붙이려 했던 다수안에는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선거구 통폐합의 기준시점을 9개월 이전인 3월 말로 잡음으로써 통폐합될 영호남 지역 일부 중진 의원들의 지역구를 존속시키는 ‘시간차 게리맨더링’을 했다는 의심까지 낳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호남 지역당의 기득권 유지용’이라고 규탄하며 지역구 의원 증원에 한사코 반대하고 있는 열린우리당의 입장에도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의원수를 340명으로 늘리자는 개혁안을, 열린우리당도 의원수를 현행 273명에서 299명으로 늘리자는 방안을 각각 제시한 바 있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의 한 관계자는 “전문성 있는 인재들이 국회에 들어올 수 있게 비례대표 의석을 늘리자는 것이지, 지역구 의원을 늘리자는 게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지역구 의원은 인구비례에 의한 지역대표로서 고유한 기능을 갖고, 비례대표는 이를 보완하는 직능대표라는 점에 비춰볼 때 인구증가에도 불구하고 지역구 의원 증원은 절대 안 된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약해 보인다. 더욱이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지역구 증원안이 영호남 지역에서의 의석수 확대를 겨냥한 것이라면 같은 맥락에서 열린우리당의 반대는 총선에서 상대적 불리함을 우려한 정략적 태도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더욱이 많은 전문가들은 총선 잿밥을 놓고 으르렁거리는 여야의 힘 대결 때문에 정작 중요한 정치개혁의 알맹이가 뒷전으로 밀려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중앙선관위의 한 관계자는 “새 정치를 하겠다는 여야 의원들이 멱살잡이를 하는 모습은 명분이 무엇이든 구태의 반복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정치자금 투명화 등 정치개혁 현안이 산적해 있는데도 이를 외면한 채 당리당략에 따라 몸싸움을 벌이는 낯 뜨거운 의원들의 행태에 국민들이 넌더리를 내고 있다는 점을 자각한다면 지금은 어느 당도 승전고를 울릴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박성원 정치부 기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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