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최호원/테러방지법 통과 '겁주기 전략'

입력 2003-12-16 18:31수정 2009-10-10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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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국회 정보위원회는 국가정보원 고영구(高泳耉) 원장 등 관계자들을 출석시킨 가운데 국내외 테러 정보와 북한 동향 등에 대한 현안 보고를 받았다.

정보위 회의는 늘 비공개로 이뤄지기 때문에 취재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런 만큼 이날 국정원이 배포한 ‘국내외 테러 위협 및 대책 보고’라는 자료는 관심을 끌었다. 국정원이 정보위 보고 내용을 자료로 배포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특히 ‘최근 우리나라에 대한 테러 위협이 증가하고 있고, 테러 관련 첩보들도 입수되고 있어 그 어느 때보다 테러 위협이 높은 상황’이라는 문구는 아랍계 테러조직의 국내 활동 여부와 관련해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여기에다 일부 정보위원들은 회의 중간에 “파키스탄의 알 카에다 조직원이 우리 공항을 탐색하다 추방당했고, 다른 알 카에다 조직원은 90년대 후반 1년여 동안 국내 중소기업에 위장 취업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전하기도 했다.

기자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자 회의실 부근에 있던 국정원 관계자들은 분위기를 띄우기 시작했다. 일부 관계자들은 “정보위원장의 브리핑을 받아 보라”며 취재를 유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배포된 자료는 국정원이 이미 지난달 국회 법제사법위에서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첩보를 전해 받았다”며 보고한 내용. 최기문(崔圻文) 경찰청장은 당시 국회 예산결산위에서 관련 질문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라고 답변한 바 있다.

기자가 이런 사실을 지적하자 국정원 관계자는 그때서야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인 테러방지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테러 정보를 다시 강조할 필요가 있었다”며 속내를 털어놨다.

결국 이날 국정원은 테러방지법 통과를 위해 국회의원들과 기자들을 ‘겁준’ 셈이다.

2001년 9·11테러 이후 마련된 테러방지법 초안은 그동안 ‘국정원의 감청 및 계좌추적권 보유’ 등의 내용에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다는 시민단체의 반발로 처리가 차일피일 미뤄져 왔다. 하지만 아웅산 테러와 KAL기 폭파사건의 악몽이 생생한 우리 현실에서 테러방지법 제정의 필요성을 부인할 수는 없다.

문제는 이 법안이 국정원측과 국회, 시민단체가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사안이지 국민을 겁주는 식의 여론몰이로 해결할 일이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특히 이 법안의 내용에 대한 시민단체들의 반발도 따지고 보면 국정원에 대한 ‘불신’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더욱 국정원측은 정정당당한 설득을 통해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최호원 정치부 기자 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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