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국민타자' 이승엽 日롯데 입단 발표하던 날

입력 2003-12-11 17:46수정 2009-10-10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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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킹의 눈물
그동안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을까. 11일 ‘일본 프로야구 진출’을 공식발표하는 기자회견 도중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 이승엽. 그는 “일본에서 반드시 성공해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박주일기자
국민타자 이승엽(27)이 일본프로야구 지바 롯데 마린스 입단을 발표한 11일 오전 서울 리츠칼튼호텔 기자회견장.

회견 말미에 말을 잇지 못하던 이승엽은 감정이 복받친 듯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눈물을 훔치던 그는 안 되겠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회견장 구석으로 갔다. 그리고 5분여 동안 다시 진한 ‘남자의 눈물’을 쏟았다. 이 바람에 회견이 중단됐다.

어떤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았고 자신의 감정을 남들에게 내보이지 않았던 이승엽. 그랬기에 공식석상에서 흘린 이 눈물은 롯데행을 결정하기까지 그가 짊어져야 했던 고뇌의 무게를 짐작케 한다.

“9년 전 대학 입학을 원하셨던 아버지 뜻에 반해 프로야구단 삼성과 계약하던 날, 아버지 손을 잡고 ‘두고 보십시오. 열심히 해서 꼭 호강시켜 드릴게요’라고 했습니다. 이번에도 똑같습니다. 아버지께 한국최고의 타자라는 자존심을 지키고 돌아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관련화보▼

- 일본진출 홈런왕 이승엽의 발자취

이승엽 선수

이승엽의 눈물


지난달 9일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뒤 한 달여간 이승엽은 해외진출과 국내잔류를 놓고 고뇌했다. 최근 메이저리그의 꿈을 접은 뒤엔 일본 지바 롯데 마린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갈림길에서 갈등했다. 돈으로 따지면 어디를 택해도 비슷했다. 하지만 하나는 거칠고 험한 길이었고 다른 하나는 편하고 쉬운 길이었다.

어디로 갈까. 10일 저녁 일본에서 김기주 J’s엔터테인먼트 지사장이 전화를 했다. 롯데측으로부터 모든 요구조건을 다 들어주겠다는 통보를 받았다는 얘기였다. 이제 결정을 내리는 일만 남았다.

고민을 거듭하던 이승엽은 저녁 늦게 전화기를 들고 대구에 계신 아버지를 찾았다. 부자간의 대화는 자정을 넘어서까지 이어졌다. 이승엽은 “돈보다 꿈을 찾아 일본에 가고 싶다”고 아버지에게 설명했다.

아버지 이춘광씨는 “진로를 결정한 논리가 명확하더라고요. 개인적으론 삼성이 지난해 내 아내가 뇌수술을 할 때 헌신적으로 도와줘서 보답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또 일본에 가서 성공한 타자가 없는 데다 여러 가지 면에서 차별을 받을까봐 걱정돼 말렸습니다. 하지만 승엽이의 말을 듣고 ‘네 뜻을 펼치라’고 얘기했습니다. 승엽이도 ‘9년 전처럼 열심히 해 성공하겠다’고 하더군요.”

이승엽은 기자회견장에 20분 늦게 나타났다. 일본행으로 굳어졌지만 끝까지 마음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밤잠을 설친 듯 초췌한 모습의 이승엽은 “언제 최종적으로 일본행을 결심했느냐”는 질문에 “5분 전 기자회견장으로 올라오는 호텔 엘리베이터 안에서였다”고 답했다.

“하루에도 20번, 30번 생각이 바뀌었다”는 이승엽은 “지금 이 순간 아내는 내가 삼성에 남는 줄 알고 있다. 모든 건 나 혼자 결정한 것이다.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상수기자 ssoo@donga.com

▼"첫시즌 목표 2할9푼-30홈런"…이승엽 일문일답▼

이승엽과 지바 롯데 마린스가 합의한 조건은 계약기간 2년에 사이닝보너스 1억엔, 연봉 2억엔, 옵션 1억6000만엔 등 총 6억6000만엔(약 72억원). 옵션은 팀 우승 3000만엔, 135경기 이상 출전 2000만엔, 홈런 3000만엔(협의 중)으로 1년에 8000만엔이다.

총액 6억6000만엔은 역대 일본 프로야구로 진출한 한국선수 8명 중 최고 대우. 또 주택과 자동차 등 부대조건이 포함됐고 2년 후엔 자유계약선수(FA)로 풀릴 수 있어 메이저리그 진출도 가능하다.

다음은 이승엽과의 일문일답.

―일본을 택하고 메이저리그를 포기한 이유는 뭔가.

“일본에서 2년간 뛰면 FA로 풀려 메이저리그에 갈 기회가 생기는 데다 롯데 감독(바비 밸런타인)이 미국인이라는 점도 맘에 든다. 미국야구를 포기한 것은 절대로 금전적인 문제 때문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밝혀질 것이다.”

―진로를 결정할 때 가장 신경 쓰였던 부분은….

“가족이었다. 사실 이번 일로 아버지께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이 자리에 들어오면서 아버지께 ‘삼성에 연락해서 양해를 구해달라’고 말씀드렸다.”

―롯데가 약팀으로 알려져 있는데….

“구대성 선배가 오릭스를 선택한 것과 같다. 강팀인 요미우리에 가면 뛸 기회를 많이 얻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롯데는 찬스가 많은 팀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에서 어느 정도의 성적이 성공의 기준이라고 생각하는가.

“타율 0.290에 홈런 30개가 첫 시즌의 목표다.”

―2년 뒤에 메이저리그에 갈 건가.

“다시 도전하겠다. 하지만 올해 같은 대우로는 가고 싶지 않다.”

김상수기자 ssoo@donga.com

▼"일본서 꼭 성공해 ML 진출하길…"…네티즌-삼성 반응

이승엽이 일본 프로야구 지바 롯데 마린스 입단 기자회견을 한 11일 삼성 라이온즈 홈페이지(www.samsunglions.com) 등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는 네티즌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대부분 ‘일본에 가서 꼭 성공하라’는 격려의 글들. ‘미국에 못 갈 바엔 한국에 남으라’며 일본 진출을 반대하던 네티즌들 상당수가 긍정적으로 돌아선 것으로 보인다.

이승엽은 “일본진출에 대한 팬들의 부정적 반응이 부담스럽다. 내게 직접 말하는 사람은 없지만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알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그동안 네티즌들의 반응에 신경을 썼다.

네티즌 배남철씨(wauwau12)는 “이승엽은 우리들의 진정한 영웅이다. 절대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돌아오라”는 메시지를 남겼고 안형진씨(jinjoo98)는 “내년에는 홈런 40개를 치고 메이저리그로 가자”고 응원했다. 김용섭씨(kgtea)는 “역대 최고 대우를 받고 일본 리그에 진출한 이승엽을 축하한다”며 “3할대 타율에 50홈런, 130타점은 충분하다”고 전망했다. 박은정씨(pejdk123)는 “이승엽이 있어 너무나도 행복했다. 앞으로 국내에서 못 보는 게 눈물나게 슬프지만 이승엽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꿀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는 글을 남기기도.

한편 삼성 구단 신필렬 사장은 “막판까지 승엽이를 남게 하려고 기울인 노력이 물거품이 돼 섭섭하다. 그러나 일본으로 가게 된 이상 반드시 성공하고, 앞으로 메이저리그에도 진출해 한국 야구를 빛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정재윤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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