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秘話 국민의 정부]<47·끝>대단원②특별좌담

입력 2003-12-03 17:30수정 2009-10-10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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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월 1일부터 매주 연재해 온 ‘비화(秘話) 국민의 정부’ 시리즈를 마무리하면서 김대중(金大中) 정부 5년을 평가하고, 다음 정권에 주는 교훈을 짚어보기 위한 특별좌담을 마련했다. 좌담에는 이종찬(李鍾贊) 전 국가정보원장, 이각범(李珏範) 전 대통령정책기획수석비서관, 임혁백(任爀伯)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참석했다.》

▽이종찬=DJ 정부의 출범은 사상 처음 여야간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뤘다는 점에서 정치사적인 의미가 컸다. 그러나 5년을 지나고 보니 당초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적지 않다. 이는 정부운영이 열정만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각범=DJ 정권은 국가 및 정권운영의 틀과 방식을 바꿀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출발했다. 우선 경제체질과 구조를 정보화시대에 맞게 바꾸고, 둘째 지역화합을 도모하며, 셋째 부패청산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그러나 세 가지 모두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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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혁백=DJ 정부가 막판에 비리와 각종 게이트 때문에 도덕적으로 매장되다시피 한 상황 속에 끝난 것은 아쉽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평가받을 업적도 적지 않다. 역설적이지만 지지도가 최악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대통령후보 국민경선제를 도입해 노무현(盧武鉉) 정권이 집권할 기반을 마련했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를 극복했고, 그 과정에서 정보화시대를 연 것도 평가받을 만하다. 또 6·15 남북정상회담으로 한반도 탈냉전의 물꼬를 텄다. 문제는 3김(金) 정치의 틀을 탈피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가신정치와 아들문제 등 부정부패 척결 의식이 부족했고, 지역갈등을 극복하지 못한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이종찬=DJ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국내정쟁에 함몰된 우리 정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계기였다. 실제로 나는 DJ에게 당 총재직을 떠나 국민의 지도자로 서라고 건의하기도 했지만 “당을 무장해제시키려 한다”는 반론에 밀려 불발됐다. 그 뒤 DJ는 오히려 국내 정치에 함몰돼 갔다. 어찌됐건 DJ는 햇볕정책이 성공하려면 한미관계가 먼저라는 것을 철저히 기본전략으로 삼았다. 노무현 정부에서 이 원칙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에 자칫 햇볕정책 전체가 어려워지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이각범=DJ는 99년까지는 IMF가 제시한 구조조정 요구를 충실히 따랐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정치적 유혹에 빠져 경기부양책을 남발했다. 99년에는 벤처 육성, 2000년에는 부동산, 2001년에는 신용카드 남발을 통한 내수 진작 정책을 폄으로써 경제지표만 윤색하는 작업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DJ는 행복한 대통령인 셈이다. 후계자를 차기 대통령에 당선시키는 데 성공함으로써 자신의 실정에 대해 철저히 보호받고 있기 때문이다.

▽임혁백=외형적 성과만 보면 DJ 집권기간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였다. 재벌과 은행 구조조정도 했다. 다만, 재벌개혁 과정에서 대북정책과 밀접했던 현대그룹이 와해된 점이 아쉽다. 벤처의 경우 정보화 육성과 맞물려 있는데, 문제는 이를 무리하게 진행하다가 부작용이 일어나 엄청난 비용을 지불한 것이다.

▽이종찬=정치개혁은 시작부터가 어려웠다. 자민련 의원을 빌려서야 겨우 원내 과반수를 차지했다. 그래도 좀더 잘 할 수 있었는데, 호남 편중 인사정책 등의 요인으로 지역 대립구도를 개선하지 못했다.

▽이각범=DJ가 출신지역과 정파적 이해에 매몰됐다고 생각한다.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우리나라를 어떻게 하면 한 단계 도약시킬 수 있는가를 생각하고 인재를 등용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다시 말해 정책중심의 국정운영을 하지 않고 정치중심의 국정운영을 한 셈이다.

▽임혁백=인사 대탕평을 통해 지지층의 외연을 넓혔어야 했다. 비화 시리즈에도 나왔지만 DJ는 인사 편중을 지적받을 때마다 차트까지 들고 나와 이전 정권시절의 차별을 바로잡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지만, 국민의 체감도와는 거리가 있었다. 대민접촉 분야와 권력기관 요직은 거의 호남이 차지했다. 그것도 개혁적인 명망가가 아니고, 과거 정권에 있던 인사들 위주로 등용하니 국민이 좋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종찬=DJ를 따르던 사람들 가운데는 기용할 만한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옛날 정권 사람을 데려다 쓰기도 했는데, 그러면 요즘말로 코드가 안 맞았다. 변명삼아 말하면, 준비된 대통령이었다고 하지만 준비된 조직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이각범=인재를 쓰기 전에 스스로가 국가를 위해 널리 천하를 구한다는 생각을 가져야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그것이 소수파로서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원인이다.

▽임혁백=전적으로 동의한다. 소수파 대통령은 외연을 넓혀야 한다.

▽이종찬=외연을 넓히지 못한 것은 DJP 공조라는 한계 탓이기도 했지만, ‘능력보다는 충성’이라는 가신과 측근들의 소리에 매몰됐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게 대통령을 실패하게 만든 것이다. 노 대통령이 코드를 찾는 것도 자칫하면 비슷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코드와 충성심에 집착하면 여기 맞지 않는 사람은 참여할 수 없는, 말하자면 ‘제한적인 참여정부’로 흐를 우려가 있다.

▽임혁백=‘코드 인사’라는 말 자체가 그런 비판적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다만, 노무현 정부는 아직 1년도 지나지 않았고, 조만간 국정쇄신을 한다고 하니 인사 스타일이 어떻게 달라질지 두고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이각범=DJ정부에서 각종 게이트가 양산된 것은 정권 핵심에 있던 사람들의 국정에 대한 태도 때문인 듯하다. 정권 차원에서 부패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미흡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임혁백=이는 민주화와 연관돼 있다. 선거가 많으면 돈에 대한 수요가 많다. 그러면 정치자금 수요가 있고, 이게 부패를 만든다. DJ 정부가 친인척 비리를 감시할 제도적 장치를 소홀히 한 것도 문제였다. 옷로비 사건 후 사직동팀을 폐지했는데, 친인척과 측근을 감시할 팀을 대안도 없이 폐지하니 오히려 게이트가 많아진 게 아닐까. 게이트가 많이 드러났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그만큼 투명도가 높아진 덕이라는 측면도 간과할 수는 없다.

▽이각범=DJ정부 기간 게이트는 많았지만, 이전 정권에 비해 그 액수는 적었다는 변명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93년 금융실명제 이후를 놓고 따지면, DJ정부의 부패는 과거보다 질과 양 두 측면 모두 많아졌다.

▽이종찬=현재와 같은 정치제도로는 부패를 근절하기 어렵다. 나를 포함해 모든 정치인이 자기 돈으로 정치를 하지 않았다. 총선과 지방선거가 매년 있고, 천문학적 돈이 들어가는 대통령선거도 한다. 이제는 선을 긋고 제도를 바꿔야지 잘잘못을 가리자면 한도 끝도 없다. 노 대통령이 돼지저금통으로 선거를 치렀다고 하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각범=햇볕정책에 대해서도 짚을 것이 있다. 햇볕정책 옹호자들은 지금처럼 안보 걱정 없이 평화스러운 때가 있었느냐, 햇볕정책이 없었으면 월드컵을 평화적으로 치를 수 있었겠느냐고 말한다. 그러나 햇볕정책이 없이도 88서울올림픽을 평화적으로 치렀다. 그 기간에는 서해교전도 없었다. 작년 월드컵 기간을 전후해 해군함정이 격침당했다. 이것이 바로 햇볕정책의 결과다. 변화하지 않는 북한 노선에 대한 안보의식을 굳건히 하되, 인도적인 지원은 해나가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

▽임혁백=햇볕정책은 분명 평가할 대목이 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말기에 북-미간 밀월관계가 있었지만 조지 W 부시 정부가 들어서면서 틀어졌다. DJ가 노벨평화상을 받은 것에 고무돼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부시 대통령과 한미정상회담을 서둔 것이 문제였다. 여기에는 DJ정부 동안 대미 인맥이 민주당 편향이었다는 문제도 있다.

▽이종찬=햇볕정책의 목적은 북한의 변화 유도다. 이는 한미일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공조해야 가능하다. 이 점에서 한미일 공조는 가장 중요하다. 노 대통령도 한미공조의 틀을 깨면 북한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또 DJ가 대북협상에서 북한에 끌려 다녔다는 비판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비전향장기수는 넘겨주면서 국군포로 얘기는 꺼내지도 않는 것은 지나친 저자세다.

▽임혁백=DJ정부의 성패를 이 시점에서 평가하는 것은 좀 이른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동아일보의 ‘비화 국민의 정부’ 시리즈처럼, 정권의 임기종료와 함께 그 정권의 공과를 일단 정리하고 넘어가는 작업은 후임 정권에는 좋은 교훈이 된다. 비화 시리즈에는 주로 실패의 교훈이 담겨 있는데, 쓴 약일수록 후임정권에는 더 좋은 보약이 될 것이다.

정리=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좌담자 프로필▼

▼이종찬(李鍾贊)▼

△1936년생 △육군사관학교 졸업

△11, 12, 13, 14대 국회의원 △민정당 사무총장(88년) △국가정보원장(99년) △민주당 상임고문(현)

▼이각범(李珏範)▼

△1948년생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독일 빌레펠트대 사회학 박사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86년) △대통령 정책기획수석비서관(95년) △한국정보통신대 교수(현)

▼임혁백(任赫伯)▼

△1952년생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미국 시카고대 정치학 박사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98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정치개혁연구실장(2003년)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회 국가시스템개혁분과 위원장(현)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현)

▼특별취재팀▼

▽팀 장=이동관 정치부장

▽정치부=반병희 차장

박성원 최영해 김영식

부형권 윤상호 이명건

이승헌 기자

▽경제부=홍찬선 박중현 김두영

기자

▽사회2부=김동원 기자

▽기획특집부=윤승모 차장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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