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우칼럼]‘개와 고양이’

  • 입력 2003년 12월 1일 18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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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이다. 한 해가 다 가고 있다. 언제고 흐르는 세월에 회한이 없었겠느냐만 지난 열한 달을 되돌아보면 가슴이 답답하다. 희망의 상상력조차 떠올리기 힘든 세상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오늘의 국정이 ‘파행’일지언정 ‘파탄’은 아니라고 보는 모양이지만 그것은 누가 개이고 누가 고양이냐는 소리처럼 허무하게 들린다. 효율성이란 절대가치하에서 무한경쟁에 내몰리며 힘겹게 살아가야 하는 많은 이들에게 그런 소리는 아무런 위안거리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맥 빠지고 지치게 할 뿐이다.

▼정작 복장 터지는 건 누군데 ▼

‘파행’은 ‘파탄’이나 매한가지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의사소통에서 어느 쪽이 개이고 어느 쪽이 고양이인지 가리는 일도 무의미하다. 생각해보자. 대통령 측근비리든 불법 대선자금이든간에 정작 복장이 터지는 쪽은 ‘불쌍한 백성’이다. 애면글면 일하고, 제돈 내고 물건 사고, 내라는 대로 세금 냈는데 대통령 측근이 먹은 돈이든 정치꾼이 먹은 돈이든 결국은 그 돈이 모두 백성 주머니에서 나온 게 아닌가. 재벌이든 중소기업이든 땅속에 묻혀 있던 돈 꺼내주었을 리 만무하다면 100원에 팔아도 될 물건 150원에 팔아 제 잇속 챙기고, 뇌물 따로 주고 했을 테니 이런 정경유착, 부패의 구조화에 만날 당하는 것은 결국 ‘힘없는 백성’이다.

이러면서도 입만 열면 민(民)이 주인인 정치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 더는 못 참겠다는 것이다. 개든 고양이든 부정한 돈 먹은 것 다 밝혀내고, 다시는 그런 짓거리를 못하게 하자는 것이다. 말만으로는 안 되니 벌 받을 자 벌 받고 엄정하고 투명한 제도를 만들자는 것이다.

사실 국민 입장에서는 특검이면 어떻고 검찰이면 어떤가. 누가 하든 제대로 하기만 하면 될 일이다. 다만 아무리 요즘 검찰이 권력 눈치 안 본다고 하지만 설마 대통령 심기마저 안 살필까 싶으니 측근비리는 특검을 하는 게 좋겠다는 것이고, 그러니 국회도 압도적으로 특검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그 속이라고 야당의 정략이 어찌 끼어들지 않겠는가. 그러나 명분이 뚜렷한 데야 딱히 트집 잡을 까닭이 없다.

그런데도 노 대통령은 특검을 못 받겠다고 했다. 못 받겠다는 게 아니라 검찰이 수사를 다 한 다음에 문제가 있으면 받겠다는 거지만 조건부든 뭐든 거부는 거부다. 성질 같아서는 당장 특검을 받고 싶지만 검찰 체면도 봐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인데 일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로되 국민 눈에는 아무래도 원님이 아전 생각하는 것 같으니 고약한 노릇이다.

노 대통령은 특검을 받았어야 했다. 그런데 안 받았다. 그것도 헌법에 있는 권한이라니 취소하기도 어렵다. 그래서야 게도 구럭도 다 놓치는 꼴이다. 그렇다고 특검을 할 수 있는 길이 아예 없어진 건 아니다. 국회가 재의(再議)를 해서 다시 통과시키면 된다. 노 대통령도 그러면 받을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했다. 재의하면 통과될 가능성도 높다. ‘조순형 민주당’은 당론으로 밀어준다고 했다. 몇 석 안 되지만 자민련이라고 그새 마음이 달라졌을 리 없다. 다 된 밥이다.

그런데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는 ‘다 된 밥’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 짬에 ‘노통’ 쪽이 손을 써 야당 쪽에 ‘배신자’가 상당수 생겼다고 의심한다. 예순다섯 고령에 단식을 계속하겠다고 한다. 국회는 올 스톱됐다. 내년 예산안이고 뭐고 대통령 버릇 고치는 일이 더 시급하다는 것이다.

▼‘더티 게임’ 빨리 끝내라 ▼

그러나 국민은 대통령 버릇 고치려다 나라 결딴내는 건 아닌가 싶어 불안하다. 짜증나고 화가 난다. 말이야 ‘나라 살리기’라고 하지만 불법 대선자금 ‘물타기’이자 총선전략 아니냐는 것이다. 그렇다고 ‘노통’ 쪽이 좋아하면 큰 오산이다. “눈앞이 캄캄했다”며 재신임까지 받겠다고 한 측근비리 의혹 또한 적당히 넘어갈 일은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요컨대 개든 고양이든 뭐 잘한 것 있다고 기(氣)싸움이며 유세 부리느냐는 얘기다.

무슨 명분, 무슨 이유를 내세운다 한들 이건 ‘더티(Dirty) 게임’이다. ‘더러운 게임’은 하루빨리 끝내야 한다.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고양이 나무라든 혹은 그 반대이든 제 몸에 붙은 검불부터 떼고 볼 일이다.

전진우 논설위원실장 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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