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秘話 국민의 정부]<46>대단원①취재기자 방담

입력 2003-11-26 18:24수정 2009-10-10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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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2월 24일 5년 임기를 마치고 청와대를 떠나 서울 마포구 동교동 자택에 도착해 주민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 DJ의 집권 5년간의 공과들이 이 순간부터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秘話 국민의 정부’ 시리즈 대단원의 막을 내리면서 취재기자 방담을 게재한다. 2003년 1월 1일부터 주 1회씩 연재해온 ‘비화 국민의 정부’는 1부 ‘권력의 흥망’, 2부 ‘부패의 그늘’, 3부 ‘DJ노믹스의 명암’, 4부 ‘햇볕정책의 뒤안’, 5부 ‘DJ의 언론 정책’으로 나눠 총 45회에 걸쳐 김대중(金大中) 정부의 권력의 이면과 정책결정의 실상을 조명해왔다. 이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못다 쓴 얘기를 기자들의 방담 형식으로 소개한다. 다음주에는 ‘비화 국민의 정부’ 시리즈를 결산하고, 이를 통해 얻은 교훈을 정리하는 전문가 좌담을 마련할 예정이다.》

―취재 과정에서 정권의 이면을 들춰볼 수 있었습니다만 최종 확인이 안 되거나 시기를 놓쳐 기사화하지 못한 사례도 적지 않았습니다.

―김대중 정부에서 청와대 고위직을 지냈던 K씨가 수사를 무마시켜 준다며 전직 정치인 L씨로부터 10억원 이상을 받았다는 제보를 뒤늦게 접수한 일이 있었습니다. 제보자는 자신이 그 정치인의 부탁으로 2억원짜리와 3억원짜리 수표를 현찰로 바꿔준 사실과 수표를 바꾼 은행이 OO은행 △△지점이라는 사실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K씨의 약속과 달리 수사무마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에 화가 난 L씨측이 관련 내용을 청와대에 진정하자 K씨가 이를 알고 L씨측에 항의를 했고 이 과정에서 제보자와 K씨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컵을 던지며 싸우기까지 했다더군요. 그런 소란 끝에 L씨는 결국 돈을 돌려받기는 했다는 겁니다. 당시 권력고위층에 관련 내용을 확인했더니 진정서에 바탕을 두고 1차 조사까지 했다고 선선히 인정하더군요. 종합해보면 돈 수수가 사실인 것으로 판단됐습니다. 하지만 K씨는 물론, 나중에 돈을 돌려받았기 때문인지 L씨도 사실을 부인하는 바람에 결국 기사화하지는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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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연재된 ‘비화 국민의 정부’지면. -동아일보 자료사진

―나름대로 상황과 근거를 갖춘 제보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DJ 정부 권력 실세였던 K씨의 한 측근은 K씨의 사생활 심부름을 해주고 그 대가로 모종의 이권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둘 사이가 틀어져 이 측근이 K씨의 비리 사실을 언급하며 비난하고 다닌다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수소문 끝에 그 측근과 접촉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뭐 그런저런 일이 있긴 하지만”이라며 관련 내용을 얼추 시인하면서도 구체적인 부분은 함구하더군요.

―팩트를 뒷받침해주는 정황을 뒤늦게 확인한 경우도 있습니다. DJ 정부 초기 대우그룹 김우중(金宇中) 회장이 DJ와 밀착돼 있었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진 것입니다만, 실제 사례를 찾은 것이죠. DJ 당선자 시절 박지원씨가 오전 1∼2시에 김 회장의 방배동 자택을 찾아와 잠옷 차림의 김 회장을 깨워 DJ의 일산 자택으로 데리고 간 일이 있다는 겁니다. 한 취재원이 관련 기사가 나간 뒤에야 ‘이런 일도 있었다’고 얘기하더군요.

―DJ 정권의 호남군맥 부상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호남지역의 장교와 장성들에 대한 인사 청탁 리스트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군 인사의 총체적 난맥상을 보여주는 이 리스트는 그동안 존재설은 있었지만 실체를 확인한 것은 처음이죠. 그러나 문건을 직접 입수하지 못해 보다 자세히 기사화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이번 시리즈가 정권의 실정(失政)을 다루는 것이어서 그런지 취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현 노무현(盧武鉉) 정부가 DJ 정권을 승계했다는 점에서 취재원들이 더욱 몸을 사리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취재 대상이 되는 현직 관료들은 자기가 하는 말이 비화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굉장히 신경 쓰는 모습이었습니다. 특히 ‘언론 개혁’ 부분은 워낙 예민한 사안이어서 그런지 극도로 말을 아꼈습니다.

―지금은 일선에서 물러나 있는 인사들도 정권과 관계된 얘기를 섣불리 했다가 재기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더군요. 특히 기사내용이 현 정부의 정책과 연계되는 경우는 굉장히 민감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조흥은행 매각과 관련한 기사 중에 노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조흥은행 매각에 개입하는 바람에 매각이 지연되고, 당초 평가액보다 값이 떨어졌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이미 공인된 평가를 소개하는 극히 일반적인 내용이었습니다만, 이 기사가 나간 뒤 관련 공무원들이 언론중재위에 제소를 했습니다. 하지만 제소를 해놓고도 미안했는지 일부 공무원은 사석에서 “우리가 하고 싶어서 합니까. 위 눈치를 봐야 하니까 그러는 거죠”라고 하더군요.

―DJ 정권에 참여했던 전직관계자 대부분이 뒷얘기를 털어놓기를 꺼렸지만 전직 고위관리 S씨는 예외였습니다. 그는 DJ가 차남인 김홍업(金弘業)씨의 구속을 막기 위해 직접 개입했다는 중요한 사실을 확인해줬습니다. 그동안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건 정설이었지만 DJ의 직접 지시여부가 밝혀진 것은 처음이었죠.

―공정거래위의 언론사 조사 대목을 취재하는 것도 의외로 수월했습니다. 2001년 언론사 조사를 지시한 공정위 상층부의 결정에 불만을 갖고 있었던 사람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공정위 관계자들 간에는 당시 위원장이었던 이남기(李南基)씨에 대해 독립된 기구로서의 위상을 찾지 못하고 정권 편에서 언론을 압박했다는 비판론을 펴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취재과정에서 역사를 보는 시각도 입장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여실히 경험했죠. 지금은 열린우리당에 간 L의원의 경우 올 초 비화 취재를 위해 만났을 때는 2000년 새천년민주당 창당 때의 경험을 설명하면서 ‘갈라지는 신당, 마이너스식 신당’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말하더군요. 그러나 L의원은 요즘은 과거 “DJ 신당은 외연 확장을 통해 기존 모순을 확대시키는 경우였고 지금 신당은 기득권을 포기한 세력들이 모인 역사적 정당이기 때문에 반드시 성공한다”고 정반대의 얘기를 합니다. 같은 사안도 자기 편의에 따라 이렇게 다르게 말하는 것을 보며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취재하다 보니 DJ 정권 관계자들은 “막상 정권이 끝나고 보니까 ‘그때 이렇게 했으면’하는 후회가 든다”는 얘기를 많이 하더군요. 한 관계자는 “앞이 뻔히 보이는 데 노무현 정부도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한숨을 쉬기도 했습니다.

―DJ의 한 측근은 “돌이켜 보면 2002년 DJ의 아들들의 구속도 불가항력이었던 것 같다”고 하더군요. 정권 주변에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세밀한 관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만큼 사고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전제로 정권을 운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권 운영은 사고를 어떻게 수습하고 극복하느냐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는 얘기죠.

―당시의 정책 결정에 대한 자성론을 말하는 관계자들의 증언도 잇달았습니다. 부실 은행의 해외매각이 대표적인 것입니다. 외환위기 때 외자유치가 지상과제로 떠올라 서둘러 은행들을 매각하긴 했지만, 그게 잘한 결정인지 솔직히 후회를 하기도 한다는 것이죠. 반드시 해외 매각해야 한다는 원칙을 정했던 것도 지금 보면 우스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군내에서는 DJ 정권 5년을 잃어버린 세월로 평가하는 시각이 많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인사 난맥이죠. 특정지역 출신 인맥에 의해 좌지우지돼 온 군 인사가 노무현 정권에서는 제자리 잡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정치세력을 등에 업고 전횡을 일삼아온 일부 세력을 솎아내는 작업이 시급하다고 주문하더군요.

―한 정권의 비화는 다음 정권 담당자들에게 스스로를 비추는 거울이 될 수 있습니다. 최근 이병완(李炳浣)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이 브리핑을 하면서 “여기서부터는 오프 더 레코드로 하되 5년 뒤에 비화 쓸 때 참고하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현 정권의 담당자들도 자신들의 지금 언행이 나중에 어떻게 평가받을 것인지를 알게 모르게 의식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으로 들렸습니다. 어떤 정권이건 전 정권의 잘못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배우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정리=윤상호기자 ysh1005@donga.com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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