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주의 여행이야기]고대 이집트 문명을 찾아서

  • 입력 2003년 11월 17일 15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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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박물관
이집트박물관
고대 이집트 문명을 찾아 본다는 것은 4500년 전의 역사로 돌아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당시의 유적이 잘 보존되어 있다. 인류의 4대 문명 발생지 중에서 그 흔적이 가장 잘 남아있는 곳이 이집트이다. 너무나 거대하고 아직까지 모양새 있는 모습을 간직한 유적들은 마치 몇 백년 전의 역사를 둘러보는 착각을 줄 정도이다.

이집트여행의 시작은 카이로에 있는 이집트박물관에서 시작된다. 나일강 강변도로 옆에 있는 이집트박물관은 얼핏 박물관이라기 보다는 유품 창고라 불릴 정도로 엄청난 크기와 수량의 소장품을 자랑하고 있다.

사실 런던의 대영박물관이나 파리의 루블박물관 로마의 바티칸박물관 등 유명한 박물관도 있지만 이들은 어떻게 보면 제국주의 시절 약탈에 의한 장물 창고라고나 할까?

고대 이집트의 유품들이 고왕국, 중왕국, 신왕국시대로 나누어 전시되어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2층 중앙에 있는 투탕카멘 특별전시실과 별도의 입장료를 지불해야 하는 파라오들의 미이라 보관실이다. 투탕카멘의 황금마스크도 그렇고 투탕카멘의 미이라를 이중으로 보관하였던 황금관(coffin)만 해도 110kg에 달한다.

투탕카멘은 지난 번에 설명했듯이 파라오로서 재임 중에는 비운의 소년 파라오였지만 죽은지 3300여년 후에 그 어느 파라오보다 유명세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파라오의 미이라를 보관하고 있는 특별 전시실은 온도와 습도조절을 위해 방문자 수를 제한하고 있다.

카이로 시내에서 나일강을 건너 리비아사막이 시작되는 곳에 거대한 피라미드군이 나타난다. 그들 중 가장 거대한 쿠푸왕, 카프레왕, 멘카우레왕의 피라미드를 바라보면 4500년 전의 역사가 눈앞에 펼쳐진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기자의 피라미드는 반만년의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표면과 꼭대기의 일부만 파손되었을 뿐 원형은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다.

처음으로 피라미드를 찾아 갔을 때에는 기자의 마을로 가서 낙타를 타고서 사막을 우회하여 돌아갔는데 두 번째로 찾아갈 때는 주차장으로 직접 택시를 타고 들어갔다. 먼저 번은 택시운전사한테 멋지게 속은 걸 알게 되었다.

낙타를 탄다는 것은 후회가 안 되는 멋진 경험이었다. 하지만 다시 타라고 한다면 일부로 선택하고 싶지는 않다. 낙타를 탄다는 건 보기보다 쉽지 않았다. 낙타가 긴 다리를 절룩거리며 걸을 때마다 위 아래로 흔들리는 진폭이 커서 웬만해서는 멀미를 않는 나도 어지러움을 느꼈다.

사막에는 약한 바람에도 모래들이 날리기 쉬워서 조금만 날씨가 불순해도 시야가 흐려진다. 그날 낙타를 타고 사막을 우회하여 돌아갔을 때 멀리 희미하게 보였던 피라미드가 환상적이었다.

카이로에서 나일강을 따라 약600km 내려가면 신왕국시대의 도읍지인 룩소가 있다. 옛 지명으로는 테베라고 하는데 이집트 여행의 핵심이 되는 곳이다.

룩소의 나일강 동안에 있는 카르나크 신전은 가장 오래 된 종교건축물 일 것이다. 높이 23m가 넘는 134개의 돌기둥으로 이루어진 신전의 규모는 로마의 바티칸성당과 파리의 노틀담성당을 합한 것보다 더 넓다. 가운데 두줄 기둥은 빛과 공기가 잘 통하도록 주변의 다른 기둥보다 훨씬 높이 세워졌다. 기둥 하나의 둘레는 웬만한 사람 10명이 팔을 펼쳐야 감쌀 수 있다. 카르나크 신전의 중앙홀을 지나면 높이 39m의 오벨리스크가 세워져 있다.

유럽을 여행하면 어떤 근거에서인지 몰라도 여행가이드들이 유럽각국이 오벨리스크를 이집트에서 모두 빼앗아 가서 이집트에는 하나도 없다고 하는데 아직도 룩소에만 22개가 남아 있다. 카르나크신전은 세티1세와 람세스2세가 가장 공을 들여 완성한 것이다.

밤에는 카르나크신전에 얽힌 이야기를 웅장한 음악과 함께 들려주는 ‘소리와 빛의 쇼(sound and light show)’가 매일 아랍어와 영어, 독일어 등 몇가지 언어로 공연된다. 내가 방문 한 날에는 불어공연이 있는데 내가 공연 관람 신청을 하자 나를 안내한 택시운전사는 내가 불어도 알아듣는 줄 알고 놀라는 눈치였다. 어차피 제대로 잘 이해하기 어려운 영어 공연보다는 불어 공연을 보고 영어가 아니어서 내용을 잘 모르겠다며 너스레 떠는 것도 괜찮지 않은가.

카르나크신전에서 남쪽으로 약 2km 아래에 있는 룩소신전도 그 못지 않은 규모로 정면에는 짝 잃은 오벨리스크 하나가 외롭게 서 있다. 원래는 한 쌍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파리의 콩코드 광장에 옮겨져 서있다.

나일강 건너 서안은 죽은 자들의 도시이다. 신왕국시대의 파라오와 왕비들, 그리고 귀족들의 무덤이 있으며 파라오들의 장례와 제사를 위한 장제전도 있다. 그중 절벽을 깎아서 만든 핫쳅수트 장제전은 여자 파라오로서 주목을 끌고 있는 곳이다.

핫쳅수트는 이복오빠인 투트모시스2세와 결혼하였다. 투트모시스2세가 죽자 핫쳅수트는 후계자인 의붓아들 투트모시스3세를 섭정하면서 스스로를 파라오의 신분으로 끌어 올렸다. 핫쳅수트는 절벽을 깍아내려 2층 테라스구조의 암굴신전을 만들었다. 그 후 핫쳅수트가 죽은 후 실권을 되찾은 투트모시스3세는 그의 계모인 핫쳅수트와 관련된 것들을 모두 없애버려 지금의 핫쳅수트장제전에는 이렇다 할 남아있는 벽화가 별로 없게 되었다.

서안의 나일강변에는 좌상을 한 거대한 멤논 거상이 한 쌍 버티고 서있다. 이는 아메노피스3세의 장제전이 있었던 자리로 그 석상은 아메노피스3세의 것으로 보인다. 서안의 계곡에는 파라오들의 무덤이 모여있는 왕들의 계곡이 있지만 내부는 모두 개조되어 있어서 그리 큰 감흥을 주지는 못하고 있다.

아부심벨은 몇 년전 우리나라에서도 발간된 프랑스인 크리스티앙 자크의 소설 ‘람세스’를 통하여 잘 알려진 곳이다. 아부심벨은 람세스2세에 의해 람세스 자신과 그의 왕비 네페르타리를 위한 신전을 세웠는데 이 신전은 그 역사적인 가치보다는 아스완댐의 건설로 인하여 수몰될 위기에 빠진 것을 유네스코에서 이 신전을 상류로 옮겨서 더 유명해지게 되었다.

아부심벨신전이 있는 곳은 매우 작은 마을이지만 카이로에서 매일 서너차례 국내선 항공편이 운항될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 항공편으로 아부심벨에 도착하는 승객은 거의 전부가 관광객으로 공항에 도착하면 대기하고 있는 이집트 항공사의 버스가 신전까지 데려다 주고 약 두시간 후에 다시 공항으로 되돌아온다. 아부심벨의 대신전은 람세스 자신을 위한 것이며 그의 아내 네페르타리를 위한 신전은 소신전으로 불린다. 이곳은 당시 나일강을 따라 룩소에서 누비아지방(지금의 수단)으로 통하는 길목이었다.

대신전과 소신전은 별개의 구조로 이웃해 있는데 그 표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부 조각처럼 잘라내어서 옮겨와 다시 이은 흔적이 뚜렷이 남아있다. 신전의 구조는 핫쳅수트장제전처럼 절벽을 깎아 파낸 암굴신전으로 내부의 벽화에는 람세스 시절의 힛타이트전투 등을 그린 벽화를 볼 수 있다.

아스완은 사막의 나라 이집트에서는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지만 우리들 입장에서는 휴양지로서 방문할 곳은 못 된다. 단지 아스완에는 고대 이집트의 신전 건축을 위한 채석장터가 남아 있으며 지금도 완성되기 전 상태의 오벨리스크가 남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유명한 추리소설인 ‘나일강의 살인사건’의 무대가 된 카타락트 호텔에 들러 차 한잔 하는 것도 멋진 추억이 될 수가 있는 곳이다.

아부심벨에서 룩소나 카이로로 돌아가는 도중에 잠깐 다른 여러 도시들도 들러 볼만하다.

이집트의 대부분의 도시들은 나일강을 따라 일렬로 늘어져 있다. 위로부터 카이로, 룩소, 아스완, 아부심벨 순서로 놓여 있는데 국내선 항공편이 이들 도시를 차례로 운항한다. 각 도시에서는 대중교통편은 없으며 택시를 대절하게 되지만 혼자 여행하더라도 부담될 정도는 아니다.

김동주/김동주치과의원장 drkimdj@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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