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맹문재, '짚가리'

  • 입력 2003년 11월 6일 18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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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지는 짚단을 받아 아버지는

쌓는다

지난 가을에는

아버지가 짚단을 던지고

할아버지가 저렇게 쌓였다

할아버지가 떠나신 올해

내가 짚단을 던지고

아버지가 받아 쌓는다

허물어지지 않게

어미 까치가 둥지를 짓듯

이리저리 맞추고 밟는 아버지를 보며

내아들을 생각한다

당신이 가시는 날엔 나도

아들이 던지는 짚단을 저렇게

쌓을 것이다

-시집 '먼 길을 움직인다'(실천문학사)중에서

추수 끝난 타작마당, 부자간 짚가리 쌓는 모습이 정겹다. 둥실둥실 떠오르는 짚단을 척척 받아 쟁이는 아버지와 아들. 할아버지 돌아가시자 내가 던지고 아버지가 받아 쌓는다. 대를 물려 짓는 까치둥지가 볼수록 포근하다.

한데 자세히 보니 저 가족들, 짚단을 던지는 게 아니로구나.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던지고, 내가 아버지를 던지고, 아들이 나를 던지려는구나. 짚단은 언제나 그 짚단인데 사람만 바뀌고 있구나.

옛 점괘에 아버지 죽고, 아들이 죽고, 손자가 죽으면 길(吉)하다 했던가. 일가족 모두 죽어 흉한 게 아니고 자연의 섭리대로 늙어 차례로 돌아가니 길하다는 것이다.

시인은 낙관하고 있지만 짚단 던져 쌓는 저 아름다운 풍경도 이젠 보기 힘들다. 훗날 과연 저 아들이 던져 올리는 게 짚단일까? 짚단이었으면.

반칠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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