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 卷三. 覇王의 길

  • 입력 2003년 9월 18일 20시 10분


코멘트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무신군은 죽고(4)

"항우는 사람됨이 성급하고 사나우며[표한] 교활하고 남을 잘 해치오[滑賊]. 일찍이 양성(襄城)을 쳐서 떨어뜨렸을 때는 성 안에 살아남은 사람이 아무도 없을 만큼 모두 땅에 묻어버렸소이다. 그가 지나가는 곳은 어디나 모두가 끔찍한 죽음을 면하지 못한다는 말까지 있소.

거기다가 초나라는 지난날에도 여러 번 군사를 서쪽으로 보내 관중(關中)땅을 거둬들이려 한 적이 있소. 하지만 장한 것은 의기(義氣)뿐, 진왕(陳王)이나 항량이나 모두 져서 죽고 말았소. 차라리 어질고 너그러운 이[長者]를 보내, 의를 짚고[扶義] 서쪽으로 가서 진나라의 부형(父兄)들을 달래보게 하는 게 나을 듯하오.

저들은 오랫동안 모진 임금에게 시달려온 터라, 이제 참으로 어질고 너그러운 이가 가서 억누름과 괴롭힘 없이 다스리려 든다면, 마땅히 그 땅을 거둬들일 수 있을 것이외다. 따라서 항우는 보낼 수가 없소. 다만 패공은 평소에 관대하고 덕망 있는 장자로 알려진 터라 서쪽으로 보낼 수 있다고 믿은 거요.”

비록 항우가 없는 자리에서 주고받은 말이라 하나, 이르든 늦든 그 말은 반드시 항우의 귀에도 들어갔을 것이다. 항우와 회왕이 뒷날 서로를 죽이고 죽게 되는 악연(惡緣)은 어쩌면 그때 이미 맺어지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항우를 참기 어렵게 한 일은 초나라가 조(趙)나라에 구원병을 보내게 될 때 벌어졌다. 패공 유방이 아직 서쪽으로 떠나기 전에 장이(張耳)와 진여(陳餘)가 새로 세운 조왕(趙王) 헐(歇)은 여러 차례 다급하게 구원을 요청하는 사신을 보내왔다. 특히 그 무렵에는 도읍인 한단(邯鄲)까지 잃고 거록성(鉅鹿城)에 갇혀 숨 넘어가는 소리를 했는데, 이쯤해서 먼저 조나라가 그 지경에 이른 경위부터 살펴보자.

처음 조나라를 되살린 조왕 무신(武臣)에게는 이량(李良)이라는 장수가 있었다. 일찍이 진나라의 관리였으나 난세의 풍운을 타고 장초(張楚)의 진왕(陳王)을 섬기게 된 자였다. 진나라를 섬길 때는 무신보다 윗자리에 있었으나 장초에서는 그 밑에 들게 되었는데, 함께 조나라의 땅을 거두러 갔다가 무신이 조왕이 되는 바람에 이량은 그 신하가 되고 말았다.

조왕 무신은 그런 이량을 무겁게 여겨 상장군을 삼고, 먼저 상산(常山)땅을 평정하도록 했다. 이량이 어렵잖게 상산을 조나라 땅으로 거둬들이고 돌아와 알리자 조왕은 다시 태원(太原)을 치게 했다.

그런데 명을 받고 태원으로 향하던 이량이 석읍(石邑)에 이르렀을 때였다. 진나라의 대군이 정형(井형)을 가로막고 있으면서 이세 황제의 사자라는 자를 보내 글 한 통을 전해왔다. 봉함조차 되어 있지 않은 그 글에는 대강 이렇게 쓰여져 있었다.

<그대는 일찍이 짐을 섬겨 귀함과 총애를 누렸다. 어지러운 세상을 만나 짐을 떠났으나, 짐은 아직도 그대를 잊지 않고 있다. 이제라도 조나라를 버리고 진나라로 돌아온다면, 지난 죄를 용서하고 그대를 높이 쓰겠다.>

그러나 읽고 난 이량은 그게 진나라 이세 황제의 글이라고 믿지 않았다. 다만 앞을 가로막은 진군이 워낙 대군이라 그대로는 이겨낼 수가 없어, 자신도 군사를 더 얻기 위해 한단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한단성이 머지 않은 곳에서 이량은 백여 기(騎)의 호위를 받으며 오고있는 행렬과 마주치게 되었다. 행렬 가운데서 움직이는 수레가 호화로운데다 기치며 마구(馬具)가 모두 예사롭지 않은 게 왕실에서 쓰는 것들 같았다. 이량은 그게 조왕의 행차라 여기고 멀리서부터 말에서 내린 뒤 길옆으로 비켜서 엎드렸다. 그리고 수레가 지나갈 때는 공손하게 절까지 올렸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 수레에 타고 있던 것은 조왕이 아니라 조왕의 손위누이였다. 성안의 잔치에 불려갔다가 술에 취해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누가 길가에 엎드려 있자 무심코 수레 곁을 따르는 군사에게 말하였다.

“그만하면 예는 넉넉하다. 이제 일어나라고 하여라.”

그리고는 수레의 창을 닫고 그대로 지나가 버렸다. 이량은 원래 진나라의 꽤 높은 벼슬아치였을 뿐만 아니라 이름 있는 가문의 자손이었다. 출신이 보잘것없는 조왕의 누이를 조왕인 줄 알고 엎드려 절한 것만도 부끄러운데, 다시 무시까지 당하고 보니 욕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아, 천하의 이량이 이 무슨 꼴이냐!”

그렇게 한탄하며 지긋이 이를 사려물자 곁에 있던 부장(部將)하나가 앙연히 소리쳤다.

“지금은 온 세상이 다 진나라에 맞서 들고일어나니, 곧 힘있는 사람이 왕이 되는 때입니다. 더구나 조왕 무신(武臣)은 원래 장군 밑에 있던 자가 아닙니까? 그런데 이제는 그의 누이조차 장군을 보고도 수레에서 내리지도 않았으니 그냥 넘길 수 없는 일입니다. 바라건대, 제가 뒤쫓아가 죽이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이량은 처음 진나라의 글을 받고는 거기 쓰여진 걸 믿지 않았으나 화가 나니 마음이 흔들렸다. 마침내는 진나라로 돌아가기로 뜻을 정하고, 사람을 보내 조왕의 누이를 죽인 뒤 그대로 군사를 휘몰아 한단으로 쳐들어갔다.

워낙 갑작스런 일이라 싸움다운 싸움조차 없이 한단은 이량의 손에 떨어지고 조왕 무신과 좌승상 소소(邵騷)는 난군 속에서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우승상 장이와 대장군 진여는 평소 사람들에게 널리 은덕을 베풀어 스스로 그 두 사람의 눈과 귀가 되어주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이 변고를 미리 일러주어 두 사람은 겨우 한단성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이량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이른 장이와 진여는 가만히 사람을 풀어 자신들이 원래 거느리고 있던 군사들을 거두어 들였다. 곧 그들을 따르는 군사들이 수만 명이나 모여들었다. 그들과 더불어 앞일을 의논하는데 빈객(賓客) 중에 하나가 슬며시 깨우쳐 주었다.

“두 분은 비록 조나라의 대장군과 우승상이시나 이 땅에서 나신 분들이 아니니 나그네 몸일 따름입니다. 조나라를 위해 일하려 해도 이 땅 사람들이 마음으로 선뜻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다만 조나라의 후손을 왕으로 세우고, 의(義)로써 그를 도와야만 비로소 큰 공업을 이룰 수 있으리라 봅니다.”

장이와 진여도 그 말을 알아들었다. 곧 사람을 풀어 수소문한 끝에 조헐(趙歇)이라는 옛 왕손 하나를 찾아내어 조왕으로 세우고 신도(信都)에 근거하였다.

소문을 들은 이량이 그냥 있지 못했다. 한단에서 수만 군사를 긁어모아 신도로 쳐들어왔다.

그러나 진작부터 싸울 채비를 갖추고 기다리고 있던 대장군 진여의 군사를 당해낼 수 없었다. 한 싸움에 부서진 질그릇 꼴이 나고 장함에게로 달아나 버렸다.

그때 마침 장함은 항량을 죽인 여세를 몰아 다음 사냥감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 처음에는 진류 쪽으로 나가있다는 항량의 별동대(別動隊)를 뒤쫓을 생각도 해보았으나 미처 그 위치를 확인하기도 전에 사라지고 없었다. 나중에 들으니 팽성 쪽으로 몰려갔다고 해 알아보게 하고 있는데 이량이 찾아왔다.

“적이 동쪽으로 갔다면 이는 세력이 궁하고 힘이 다해[勢窮力盡] 저희 근거지로 달아났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초나라 세력은 걱정할 게 없으니 먼저 북쪽으로 조나라부터 평정하시지요. 한단은 장군의 북소리 한 번이면 떨어질 것입니다. 팽성은 그 다음에 쳐도 늦지 않습니다.”

몇 차례 싸움을 주고받는 동안에 쌓인 원한으로 이량이 그렇게 졸라댔다. 장함도 그 말을 옳게 여겼다. 이전에 시황제가 천하를 아우를 때도 초나라를 가장 어렵게 여겼는데, 아직 사방에 강한 반적(叛賊)들을 남겨놓고 먼저 초나라의 옛 땅으로 들어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에 장함은 대군을 이끌고 하수(河水=황하)를 건너 조나라로 밀고 들었다.

장이와 진여가 조나라 사람들과 뜻을 모아 조왕 헐을 받들고 힘을 다해 맞섰으나 그 사이 배로 부풀어 오른 장함의 대군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장함의 20만 대군이 한단을 에워싸고 들이치자 성은 며칠도 버티지 못하고 떨어졌다. 장함은 한단 성안의 백성들을 모두 하내(河內)로 옮기고, 그 내성(內城)과 외성(外城)을 모두 허물어버렸다.

겨우 목숨을 건져 한단성을 빠져 나온 조왕과 장이는 거록(鉅鹿)으로 달아나 그 성 안에 숨었다. 그러자 장함의 부장(部將) 왕리(王離)가 뒤쫓아와 철통같이 거록성을 에워쌌다. 북쪽으로 달아났던 진여가 상산에서 군사 수만을 얻어 거록 북쪽에 진을 치고 있었으나, 장함이 다시 대군을 이끌고 거록 남쪽 극원(棘原)에 자리잡자 성안은 오늘 내일을 기약하기 어려울 정도로 위급해졌다.

이에 장이와 조왕 헐은 사방으로 진나라에 맞서 일어난 제후들에게 사자를 보내 구원을 빌었다. 그 사자가 초나라에도 여러 번 왔으나 이제야 겨우 구원병을 보내게 되었는데, 그 장수들의 진용(陳容)이 또 놀랄 만큼 뜻밖이었다.

“군사 5만을 내어 조나라를 구하되 전(前) 영윤 송의(宋義)를 상장군(上將軍)으로 삼고 , 노공 항우를 차장(次將), 전(前)군사 범증을 말장(末將)으로 따르게 한다. 다른 여러 별장(別將)들도 이제부터는 모두 경자관군(卿子冠軍) 송의의 명을 받들라!”

경자관군이란 회왕의 조정이 송의를 위해 따로 만들어낸 칭호였다. 경자(卿子)란 공자(公子)와 비슷한 말이라고도 하고, 공자가 공(公)의 아들인 것과 같이 경자는 경(卿)의 아들을 가르킨다고도 하는데, 어느 쪽이든 신분이 고귀함을 드러내기는 마찬가지다. 또 관군(冠軍)이란 상장군의 옛말이라고도 하고, 관(冠)이 사람 몸의 맨 위에 있듯이 모든 장졸 위에 있음[在諸軍之上]을 뜻한다고도 하나, 둘 모두 최고의 군권(軍權)을 나타내는 데는 차이가 없다.

송의가 회왕의 오래된 측근이기는 하지만 그를 문관(文官)으로만 알아온 사람들은 그 뜻밖의 중용(重用)에 그저 아연해 했다. 하지만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일이 그리 된 게 별로 놀라울 것도 없었다. 송의 자신도 그 동안 틈만 나면 병가(兵家)로서의 역량을 회왕에게 은근히 과시해온 데다, 그 무렵 제나라의 사신으로 팽성에 와 있던 고릉군(高陵君) 현(顯)의 추켜세움도 한몫을 단단히 했다.

“송의는 실로 장재(將材) 중에 장재입니다. 지난번에 제가 사자로서 무신군(武信君) 항량의 군중으로 찾아가는 길에 만났을 때, 그는 반드시 항량이 장함에게 크게 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과연 며칠 되지 않아 초군은 대패하고 항량은 난군(亂軍)중에 죽고 말았습니다. 그처럼 싸우기도 전에 미리 질 징조를 알아보았다면 이야말로 군사를 부릴 줄 아는 사람이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 깨우침 덕분에 한 목숨 건진 고마움까지 보태 고릉군 현이 그렇게 입에 침이 마르도록 송의를 추켜세웠다. 거기다가 옛부터 알던 제 사람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어하는 회왕의 은밀한 바람이 겹쳐 송의는 하루아침에 초나라의 병권(兵權)을 한 손에 거머쥘 수 있었다.

글 이문열

그림 박순철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