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魂의 야구

  • 입력 2003년 9월 16일 18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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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영웅에 대한 열광은 그 시대의 사회적 상황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사람들이 암울한 현실과 불확실한 미래로부터 탈출하기를 원하면 원할수록 스포츠가 만들어내는 영웅에게 더욱 몰입하는 경향이 있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번져 나갔던 지난해의 월드컵 열기를 통해 우리는 그들의 고민과 욕구 등 다른 의미도 읽을 수 있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만년 꼴찌 팀이었던 한신 타이거스가 리그 우승을 차지하자 일본 열도가 흥분하고 있다. 소비 진작 등 경제 파급효과가 6조원에 이른다는 분석도 나왔다. 우리로서는 ‘그 정도로 열광할 일인가’ 하는 낯선 느낌마저 갖게 된다.

▷18년 만에 이뤄진 한신의 우승이 드라마틱한 요소를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1998년부터 2001년까지 4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했으며 선수들은 연이은 패배에 무감각해져 있었다. 그러나 올해 한신 선수들은 전과 달리 자신감 넘치는 눈빛으로 그라운드에 섰다. 전반기 승률이 무려 0.720. 우승은 이때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연고지인 오사카의 팬들은 5만명이 넘는 홈구장 관람석을 연일 가득 메우며 선수들의 선전에 화답했다. 진흙탕을 헤매다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신데렐라 스토리’의 전형이다.

▷일본 판 ‘인생 역전’의 주역은 호시노 센이치 감독이다. 2년 전 감독에 취임한 이후 강력한 팀으로 변모시키자 일본 기업들 사이에서는 그의 지도력을 분석하고 현장에 접목시키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월드컵 이후 한국 기업들이 거스 히딩크 감독을 벤치마킹했던 것과 비슷하다. 호시노 스타일의 경영방식이라는 뜻의 ‘호시노이즘’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호시노 감독의 개혁 철학은 ‘혼의 야구’, 즉 정신력 강화로 요약된다. 선수들을 호되게 질책하는 것으로 유명한 그는 두 가지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첫째는 연봉을 많이 받는 선수나 책임이 무거운 코치들을 더욱 호되게 다루는 것이고, 둘째는 야단을 친 뒤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반드시 준다는 것이다.

▷‘한신 타이거스 열풍’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강력한 리더십을 갈구하는 일본 사회의 분위기를 반영한다. 장기 불황에 시달려 온 일본인의 좌절감은 크다. 특히 정치인의 무능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 그들이 이번 한신의 우승에서 뭔가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그래서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호시노 감독을 정치인으로 영입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리더십 부재로 깊은 고민에 빠진 우리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 정치는 어디서나 골칫거리다. 한국 정치의 희망은 어디서 찾아야 하나.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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