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413…1944년 3월3일(1)

  • 입력 2003년 9월 7일 20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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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하게 부서진 검붉은 구름이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드넓은 하늘을 흐른다. 칠탄산 너머에서 태양이 모습을 드러내자 대기 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먼지와 날벌레와 꽃가루가 몸을 떨고, 강가 민들레, 냉이, 제비꽃 봉오리가 태양의 리듬에 맞춰 천천히 잎을 벌린다. 잎사귀 뒤에서 밤을 밝힌 하얀 나비, 노란 나비도 훨훨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안녕! 잘 잤니? 기운 찬 목소리가 영남루 돌계단에 울리고, 까까머리 남자아이들의 모습이 하나, 둘, 셋, 넷, 다섯…, 처음에는 한 계단씩 건너 뛰어올라가던 남자아이들도 영남루 지나 정자를 지나칠 즈음에는 신사의 기둥문을 쏘아보듯 턱을 치켜들고, 헉 헉 헉 헉, 숨을 몰아쉬었다.

경내에 집합한 밀양보통학교 학생들은 5학년 매화반의 고바야시 선생님이 배례전 앞에서 참배하는 모습을 차렷 자세로 지켜보다가 경례를 하고는, 손에 손에 빗자루와 쓰레받기, 걸레를 들고 경내를 청소하기 시작했다. 청소가 다 끝나면 일단 집으로 돌아가 아침을 먹고 8시에 영남루에 다시 모여 다같이 등교한다.

청소가 다 끝난 것 같다. 학생들은 고바야시 선생님 인솔하에 두 줄로 서서 군가를 부르면서 계단을 내려온다.

전투 끝난 전장

잡초를 밟으며 돌아오는 길

발치에서 보았네

친구의 피묻은 전투모

얼른 주워

두 손에 꼭 쥐고

어찌 너 혼자만 죽게 할 수 있으리

내일은 나도 이 몸 바치리

흐르는 눈물 피로 타올라

손가락 헤어보는 총알 자국

하나 둘 셋 넷 여섯 일곱

보세요 부대장

눈을 찌푸리고 올려다보고 있자니, 신사 건물에 기대듯 서 있는 벚나무는 말라죽은 고목만 같다. 가까이 가면 가지 끝에 맺혀 있는 꽃봉오리가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왜귀신을 모신 신사는 가까이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솔 솔 살랑 살랑, 솔 솔 살랑 살랑, 대야와 소쿠리를 옆구리에 낀 조선 아낙네들이 봄바람과 함께 강둑을 내려오는데, 치마저고리 모습은 간 데 없다. 모두들 시퍼렇거나 누리끼리한, 그리고 거무죽죽한 몸뻬 바지를 입고 있다. 봉긋 부푸는 치마와 팔랑팔랑 나부끼는 저고리 고름을 기대했던 바람은 윙-윙 투덜거리며 용두목 쪽으로 불었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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