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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9월 7일 20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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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내에 집합한 밀양보통학교 학생들은 5학년 매화반의 고바야시 선생님이 배례전 앞에서 참배하는 모습을 차렷 자세로 지켜보다가 경례를 하고는, 손에 손에 빗자루와 쓰레받기, 걸레를 들고 경내를 청소하기 시작했다. 청소가 다 끝나면 일단 집으로 돌아가 아침을 먹고 8시에 영남루에 다시 모여 다같이 등교한다.
청소가 다 끝난 것 같다. 학생들은 고바야시 선생님 인솔하에 두 줄로 서서 군가를 부르면서 계단을 내려온다.
전투 끝난 전장
잡초를 밟으며 돌아오는 길
발치에서 보았네
친구의 피묻은 전투모
얼른 주워
두 손에 꼭 쥐고
어찌 너 혼자만 죽게 할 수 있으리
내일은 나도 이 몸 바치리
흐르는 눈물 피로 타올라
손가락 헤어보는 총알 자국
하나 둘 셋 넷 여섯 일곱
보세요 부대장
눈을 찌푸리고 올려다보고 있자니, 신사 건물에 기대듯 서 있는 벚나무는 말라죽은 고목만 같다. 가까이 가면 가지 끝에 맺혀 있는 꽃봉오리가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왜귀신을 모신 신사는 가까이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솔 솔 살랑 살랑, 솔 솔 살랑 살랑, 대야와 소쿠리를 옆구리에 낀 조선 아낙네들이 봄바람과 함께 강둑을 내려오는데, 치마저고리 모습은 간 데 없다. 모두들 시퍼렇거나 누리끼리한, 그리고 거무죽죽한 몸뻬 바지를 입고 있다. 봉긋 부푸는 치마와 팔랑팔랑 나부끼는 저고리 고름을 기대했던 바람은 윙-윙 투덜거리며 용두목 쪽으로 불었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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