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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8월 25일 18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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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보처차장 ‘기고파문’ 석연찮아 ▼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긴장된 관계’가 오히려 ‘적대적 관계’로 공고화되어 가는 것을 보면서 혹시 다른 전략적 사고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민주주의는 어차피 여론정치이고 편드는 사람이 많으면 이길 수 있는 것이니, 언론과 싸움을 하면서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 있다면 그것도 국정운영의 노하우라고 할 수 있는 셈이다.
이번에 파문을 일으킨 정순균(鄭順均) 국정홍보처 차장의 해외 언론 기고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는 것일까. 본인은 번역 과정의 잘못이라고 극구 변명하고 있지만, 그간 언론에 대한 청와대의 태도로 미루어 우발적인 것으로 치부하긴 어렵다. 게다가 정 차장은 바로 대통령직인수위 시절 대변인으로 일하면서 전경련의 한 인사가 인수위의 목표를 ‘사회주의적’이라고 했다고 해서 윽박지르며 본인의 해명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던 당사자이기도 하다. 이런 그가 지금 자신의 진의가 잘못 전달되었다는 해명을 받아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공평한 일일까.
물론 문제의 핵심은 그게 아니다. 이른바 참여정부의 언론관이 문제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도대체 언론과 시시때때로 싸우고 기자들을 공개적으로 폄훼하는 민주정부가 어디 있는가. 언론이나 기자들을 ‘필요악’ 정도로 치부하고 있는 것일까. 정부가 언론과 싸우는 것이 불공정한 이유는 공적자금과 공적 인력을 동원하여 사적인 단체와 겨루는 것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방불케 할 만큼 온당치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국정을 위한 어젠다가 얼마나 많은데 허구한 날 언론과 티격태격하고 있단 말인가.
지금 정부로서는 자신은 잘하고 있는데 언론이 악의를 갖고 잘못을 침소봉대하는 바람에 ‘아마추어 정부’로 치부되고 있다는 불만이 큰 것 같다. 또 언론의 흠집내기야말로 대선 때의 악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사항이 있다. ‘노무현 후보’에 대한 호불호는 언론사나 기자마다 다를 수 있으나 ‘노무현 대통령’이 실패하기를 원하는 언론사나 기자는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 대통령이 실패한다는 것은 정치인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실패와 직결되는 중차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국사회를 보면서 집단 이기주의, 지역 이기주의, 자사 이기주의가 팽배하고 있는 현실을 우려하고 있다. 그러한 이기주의야말로 한국사회를 카오스로 몰아넣은 주범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문이 있다. 정부에는 이기주의가 없는가. 정부에는 정권 이기주의나 대통령 이기주의가 없는가. 없지 않다면, 정부의 이기주의는 어떻게 발견되고 시정될 수 있는가. 바로 그것이 언론의 임무가 아닐 수 없다.
▼정부가 해서는 안될 싸움 ▼
정부라고 해서 싸움을 하지 말란 법은 없다. 문제는 지금 정부는 해서는 안 될 싸움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범죄와의 전쟁’이나 ‘부패와의 전쟁’은 명분도 충분하고 한국 민주주의의 질을 한 단계 올릴 수 있는 품위 있는 전쟁이다. 그러나 ‘오보와의 전쟁’, ‘언론과의 전쟁’, ‘기자와의 전쟁’은 민주주의의 본질을 위협하는 백해무익하고도 저급한 싸움일 뿐이다.
가뜩이나 분열과 갈등이 첨예화되고 있는 요즘이다. 정부가 조정자로 나서도 성공 여부를 가늠할 수 없는데, 대통령 자신이 언론사를 상대로 송사를 벌이고 또 그 송사가 내외의 비판을 받게 되자 일부 언론사와 기자의 치부를 드러내는 무리수를 두면서, 어떻게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강조할 수 있는가. 이 두 가지 태도가 모순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면 아둔한 것이고, 알면서도 고치지 않는다면 위선이며 태만이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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