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민혁/갈팡질팡 한나라黨

  • 입력 2003년 8월 18일 18시 34분


“수권 정당의 입장에서 국정 현안에 대처해 나가겠다.”

최병렬(崔秉烈) 대표체제 출범 이후 한나라당이 틈날 때마다 강조해 온 말이다. 그러나 최근 정국 현안의 처리를 두고 수시로 입장을 바꾸는 한나라당의 ‘갈지(之)자’ 행보를 보면 이 대(對)국민 약속이 말잔치에 그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김두관(金斗官) 행정자치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 처리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18일 오전 열린 한나라당 상임운영위원회의에서도 한나라당의 오락가락하는 행보가 여실히 드러났다. 홍사덕(洪思德) 총무는 회의에서 “오늘(18일) 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국회사무처에 접수시키기로 했다”고 보고했다. 홍 총무의 보고는 12일 당내 원내대책회의와 의원총회의 결정에 따른 예정된 수순이었다.

하지만 남경필(南景弼) 의원이 제동을 걸면서 분위기는 일변했다. 남 의원은 “정부의 국정운영 전반이 심각하게 문제가 되고 있는데 행자부 장관 문제에만 집착하지 말자”며 해임건의안 제출을 재고할 것을 촉구했다. 김 장관 개인에 대한 공세가 자칫 부산 경남(PK) 지역에서 동정론을 불러일으켜 역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는 발언이었다. 이에 신경식(辛卿植) 의원이 “여기저기서 한두 마디 나온다고 해임건의안 제출을 미루면 왔다 갔다 한다는 비판을 산다”고 주장하면서 격론이 벌어졌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결국 최 대표는 “내일 의총을 열어 다시 의논하자”고 한 걸음 물러섰다.

한나라당의 혼란스러운 행보는 주5일 근무제 처리 문제에서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한나라당은 당초 “노사정 합의에 따르겠다”고 입장을 정리했었다. 그러나 당내 일각에서 “노사정 합의가 노조에 유리한 쪽으로 정리될 경우 재계의 반발도 고려해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합의에 실패하면 정부안대로 처리한다”고 입장을 바꿨다.

그러나 그 뒤 “우리가 여당도 아닌데 정부안대로 처리한다는 입장을 정하면 근로자 표만 잃는다”는 지적이 나오자 “합의에 실패하면 정부안을 ‘토대로’ 처리한다”라고 합의 실패시 대안제시의 여지를 열어놓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이처럼 당 지도부의 오락가락 행보가 계속되자 당내에서조차 “표만을 의식해 좌로 갔다가, 우로 갔다가 하면 우리가 비판하는 노무현(盧武鉉) 정부의 행태와 다른 게 뭐냐”는 자조의 소리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한나라당의 고민은 정부 여당이 국정 혼선을 빚고 있는데도 한나라당 지지도 역시 답보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대책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원칙 있는 행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박민혁 정치부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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