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이승엽 '신화의 담장'을 넘기다

입력 2003-06-22 23:54수정 2009-10-10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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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이런!’

300호 홈런과 301호 홈런이 한꺼번에 나올 줄은 몰랐다. 그것도 동점홈런과 9회말 끝내기 만루홈런일 줄이야….

22일 오후 9시7분. 8회 1사후 SK 투수 김원형이 초구를 던지자마자 “딱” 하는 경쾌한 타구음이 대구구장 밤하늘에 울렸다. 스탠드를 가득 메운 1만2000여명의 관중은 모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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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엽 300호 홈런비결은 '파리채 타법'

쏜살같이 날아간 공은 오른쪽 담을 살짝 넘겼다. 모두가 기다리던 대망의 300홈런.

이승엽(27·삼성)은 불끈 쥔 두 주먹을 치켜들었다. 세계 최연소 300홈런 타자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전광판 위에서 300발의 축포가 밤하늘을 진동시키는 가운데 이승엽은 다이아몬드를 천천히 돌며 기쁨을 만끽했다. 이승엽의 나이 26세10개월4일, 경기 수론 1075경기째에 이룬 대기록이다.

경기시작 5시간 전인 오후 1시경부터 매표소 입구에서 줄을 서는 열성을 보인 대구팬들은 이승엽이 ‘국민타자’라는 점에 착안해 홈런이 터지자 즉석에서 “동해물과 백두산이∼”로 시작되는 ‘애국가’를 불렀다. 누가 시킨 게 아니라 팬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진 합창이었다.

1회 좌익수 뜬공, 3회 볼넷, 5회 1루수 땅볼을 기록한 뒤 네 번째 타석인 8회 SK 김원형의 초구를 받아쳐 비거리 100m를 기록한 이 300호 홈런은 2-3으로 뒤진 상태에서 터진 동점 솔로홈런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었다.

이승엽 홈런의 흥분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다음 타자인 4번 마해영은 좌측 담을 넘기는 역전 솔로아치를 그려내 다시 한번 대구구장을 들끓게 했다. 지난해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이승엽의 동점 스리런 홈런과 마해영의 끝내기 결승홈런을 연상시키는 명장면이었다.

하지만 9회말 더욱 극적인 장면이 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9회초 1점을 내줘 4-4 동점을 허용한 삼성은 9회말 2사 만루의 기회를 맞았다. 이 찬스에서 다시 등장한 타자는 바로 이승엽.

그는 이번엔 조웅천의 4구째를 끌어당겨 301호 홈런을 믿기지 않는 끝내기 만루홈런으로 장식했다. 8회에 쳤던 홈런과 똑같은 코스로 날아간 그랜드슬램. 영화를 만들어도 이렇게 극적으로 만들 순 없었다.

그는 경기 전 “300호 홈런까지는 부모님에게 바치고 그 후엔 아내에게 바치겠다”고 했다. 아내에게 바치는 1호 홈런이 바로 화려한 끝내기 만루홈런인 셈이었다.

▼"딱 맞는 순간 속으로 넘어가라 외쳤다"▼

이승엽은 “지난해부터 경기 전 애국가가 나오는 동안 우리 엄마가 빨리 낫고 우리 가족이 항상 잘 되기를 늘 마음속으로 기원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300홈런을 때려낸 이날 어머니댁에서 자고 왔다고 했다.

이승엽의 어머니 김미자씨(53)는 지난해 1월 아들의 신혼여행 중 뇌종양으로 쓰러진 뒤 아직까지 완쾌되지 않은 상태. 아들을 알아보긴 해도 아들이 홈런 친 건 잘 기억하지 못한다.

―홈런을 친 순간은….

“방망이 안쪽에 맞고 약간 먹혀서 사실 넘어갈 줄 몰랐다. 속으로 ‘넘어가라, 넘어가라’ 하고 외쳤다.”

―9회말엔 만루찬스를 기다렸나.

“대기타석에서 내게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풀스윙으로 나갔는데 자신있었다. 전체적으로 300홈런이 더 소중하지만 팀이 이길 수 있게 된 2번째 만루홈런이 더 기분 좋았다. 300홈런을 쳤을 때는 아무 생각도 안 나고 담담했다.”

―누구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은가.

“삼성 유니폼을 입은 게 자랑스럽다. 이 줄무늬 유니폼을 입었던 선배들이 자랑스럽고 내가 삼성 선수라는 게 자랑스럽다. 동료들과 코칭스태프, 특히 나를 항상 잘 돌봐 주신 박흥식 코치께 감사드린다.”

―다음 목표는?

“40개를 치면 50개, 50개를 치면 55개를 향해서 계속 새로운 목표를 세워 나가겠다.”

―오늘 밤은 뭘 하고 싶은가.

“경기 전에 아내하고 노래방에 가기로 약속했다.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겠다.”

대구=김상수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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