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승련/감사원의 ‘權수석 감싸기’

  • 입력 2003년 5월 27일 18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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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은 26일 정부 부처 예산집행 실태 감사보고서를 언론에 공개했다. 200여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 속에서 “지난해 조달청장이 9700만원의 예산을 부당하게 전용했고, 3000만원을 영수증 없이 현금으로 썼다”는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당사자의 이름은 없었다.

기자들은 지난해 조달청장을 지낸 사람이 권오규(權五奎) 대통령정책수석비서관과 김성호(金成豪) 전 보건복지부장관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감사원에 실명을 밝히라고 요청했다. 두 사람 다일 수도 있고, 그중 한명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감사원 공보실은 “실무자가 없어서 확인하기 어렵다”며 난색을 표하다 거듭 확인을 요청하자 1시간 뒤에야 “두 사람 모두”라고 밝혔다.

이후 감사원은 뉴스의 초점이 권 수석에게 맞춰질 것을 의식한 듯 기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심각한 잘못은 아니다”고 해명하기 시작했다. 조달청장의 예산 전용 및 증빙서 없는 현금 사용에 대해 조달청이라는 기관 전체에 주의까지 준 감사원이 스스로 감사 결과를 평가절하한 것이다. 오후 5시반이 지나자 감사원 직원 3명이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10층에 있는 기자실로 직접 찾아와 보충설명과 해명을 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감사원은 권 수석에 관한 상황만 구체적으로 해명하고 김 전 장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감사원의 ‘권 수석 감싸기’가 오죽했으면 총리실 관계자도 “문제가 된 조달청장이 김 전 장관 한 명뿐이었다면 저렇게 적극 나서서 해명을 해주었겠느냐” “청와대는 가만히 있는데, 왜 감사원이 몸이 달아 난리냐”며 혀를 찼을까.

오후 7시경 조간신문 가판이 나온 뒤에도 감사원의 ‘대리 방어’는 계속됐다. 감사원 고위관계자는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권 수석이 개인 용도로 쓴 것이 아니다. 직원들의 애경사 축의금 조의금으로 냈고 화환 구입에도 썼다. 상품권을 구입해 유관기관에 돌린 것도 있다”고 권 수석을 ‘대변’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영수증 없이 쓴 돈인데 어떻게 개인 유용은 없었다고 장담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권 수석이 개인적으로 썼다는 것을 (우리가) 입증하지 못했다. 조사당사자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감사원 관계자는 “두 조달청장에 대해 직접 조사하지 않았고, 예산담당자의 설명만 들었다”고 말했다.

감사원은 다른 공무원들의 유사한 비리에 대해서 추상같은 조치를 내려 왔다. 그런데 왜 유독 권 수석만을 감싸는 것일까. 권 수석이 감사원의 구조조정 책임자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야 그 의문이 풀렸다.

김승련 정치부 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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