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 卷二. 바람아 불어라

  • 입력 2003년 5월 22일 17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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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만남(1)

동양(東陽) 현령 진영(陳영)이 2만 군사를 이끌고 온데다 경포(경布)의 만여 명과 포장군(蒲將軍)의 만여 명이 더해지자 항량이 거느린 군세(軍勢)는 어느새 7만에 가깝게 부풀어올랐다. 항량은 그들을 다시 북으로 휘몰아 수수(휴水)를 건넌 뒤 하비(下비)에 이르렀다. 한 갈래 군사가 팽성(彭城=지금의 徐州) 동쪽에 머무르고 있다가 항량의 길을 막았다.

항량이 먼저 사람을 풀어 길을 막는 게 누구의 군사인지 알아보았다. 군사들과 정탐을 나갔던 군관이 돌아와 말했다.

  <이문열 신작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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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현(陵縣) 사람 진가(秦嘉)가 이끄는 군사라고 합니다. 진가는 진왕께서 군사를 일으키자 뒤따라 일어난 여러 의군(義軍)의 우두머리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이 진나라에 맞서 싸우면서도 굳이 진왕 밑에 들기를 마다하던 자로서 스스로 대사마(大司馬)를 칭하면서 진왕께서 보낸 무평군(武平君) 반(畔)을 죽이고 자립한 적도 있습니다.”

“그래도 진나라에 맞서기는 저나 우리나 마찬가지 아니냐? 그런데도 우리 길을 막는 까닭은 무엇이라 하더냐?”

“진왕이 장함에게 쫓겨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자 진가는 진왕이 죽었다고 우기며 초나라 왕족 경구(景驅)를 왕으로 세웠습니다. 따라서 우리 길을 막는 것이 아니라, 이제 경구가 진왕을 이어 초왕(楚王)이 되었으니 그 밑으로 들어와 그 명을 받들라는 뜻입니다.”

그같은 군관의 말에 항량이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진왕은 가장 먼저 진나라에 맞서 군사를 일으키셨고 또 처음으로 초나라를 되세우셨으니, 우리 모든 의군의 맹주(盟主)요 왕을 일컬으셔도 지나치지 않으실 분이다. 장함과의 싸움에 서 지시고 형세는 불리해져 이제는 그 가신 곳조차 알 길이 없으나 의연히 장초(張楚)의 대왕이시다. 그런데 지금 진가는 진왕을 저버리고 경구를 왕으로 세웠으니 이는 실로 대역무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진가야말로 진나라에 앞서 쳐 없애야할 역적이다!”

그리고는 항우와 종리매를 앞세워 바로 진가의 진채를 들이치게 했다. 어쩌면 항량은 거기까지 싸움다운 싸움 한번 없이 온 군사들을 시험해볼 핑계를 얻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한편 진가는 처음부터 항량과 그가 이끄는 군사들을 얕잡아 보고 있었다. 왕족이나 명문거족의 후예는 군사를 일으키는 자들이 저마다 내세우는 혈통이요, 그들을 따르는 군사도 먹을 것이나 얻을 수 있을까하여 따라나선 유민들이 태반인 시절이었다. 요란한 소문만 털어 버리면, 항량의 군사 또한 멀리 남쪽에서 올라온 어중이떠중이 유민군(流民軍)이 오는 도중에 턱없이 머릿수만 부풀어 허세를 떨고 있는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비록 자기가 세우기는 했으나 왕을 끼고 있어 얻게된 이로움도 진가의 간을 키웠다. 한번 경구를 왕으로 세우자 세력 약한 유민의 무리가 사방에서 모여들어 그들의 세력을 불려주었다. 달포 전에도 패공 유방이라는 자가 군사 수천을 이끌고 제 발로 찾아와 받아달라고 조른 적이 있었다.

진가는 경구를 앞세우고 유방을 받아들여 동양 사람 영군(寧君)과 함께 장함의 부장(副將) 사마니(司馬尼)를 치게 했다. 둘은 사마니를 이기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서북쪽의 든든한 울타리 노릇은 잘해냈다. 진가가 그때 항량의 길을 막은 것도 반드시 싸우겠다는 뜻보다는 그렇게 겁을 주어 유방처럼 제 발로 귀순해 오도록 만들기 위함이었다.

진가의 마음가짐이 그렇다 보니 그 군사 또한 싸울 채비가 되어 있을 리 없었다. 진채조차 제대로 단속하지 않고 턱도 없이 항량이 귀순하겠다는 소식만 기다리는데, 갑자기 항우와 종리매가 이끄는 두 갈래 군사가 진가의 진채를 네 토막으로 갈라놓듯 짓밟아 왔다. 그제야 놀란 진가가 장졸들을 독려해 맞서보려 했으나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뒤따라 덮쳐온 항량의 중군(中軍)을 당해내지 못하고 전군이 그대로 무너져 버렸다.

하지만 묵은 생강이 맵다고, 일찍부터 녹림(綠林)을 떠돌았고 진승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군사를 일으켰던 진가라 그대로 끝장이 나지는 않았다. 경구를 구해 어지러운 싸움터를 벗어나기 바쁘게 거기까지 뒤따라온 졸개들을 풀어 패군(敗軍)을 수습했다. 뿔뿔이 흩어져 달아났던 장수와 군사들이 소문을 듣고 진가와 경구를 찾아들어 호릉(胡陵)에 이르렀을 때는 다시 상당한 세력이 되었다.

“방심하다가 어린것들에게 당했구나. 그것들에게 몇 배로 갚아주지 않으면 내 초나라의 대사마(大司馬)가 아니다!”

진가가 그렇게 이를 갈고 있는데 때맞추어 항량의 대군이 거기까지 뒤쫓아왔다는 전갈이 들어왔다. 듣고 난 진가가 투구 끈을 여미며 장수들에게 소리쳤다.

“모두 군사들을 단속해 싸울 채비를 단단히 갖추라! 길목에 숨어 기다리다가 쥐가 독 안에 들기를 기다려 가차없이 때려잡으리라!”

그리고는 적은 군사로 많은 군사를 되받아 치기 좋은 길목을 고른 뒤에 거느리고 있는 군사를 모두 숨기고 기다렸다. 그 사이 장졸들을 잘 다독여 사기도 어느 정도 회복된 데다, 병장기도 그만하면 쓸만하다 싶게 갖춘 체였다.

진가 쪽에서 보면 미리 지리(地利)를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기습에 가까운 반격이었다. 또한 먼저 와 기다리던 군사로 급하게 뒤쫓아오는 군사를 치는 것이요, 한번 져서 삼가고 살피는 군사로 이겨 교만해진 군사를 치는 일이었다. 마치 처음부터 이기기로 되어 있는 싸움 같았다.

하지만 아직도 진가가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게 있었다. 항우의 빼어난 무예와 그를 따르는 8천 강동병의 용맹이었다. 그날 구릉 사이로 난 좁은 계곡에 숨어 기다리던 진가는 항량의 대군이 물러나기 어려울 정도로 깊이 들어왔다 싶자 좌우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쳐라. 한 놈도 살려보내지 마라!”

그리고 자신도 칼을 빼들고 말에 올라 앞장서 덮쳐갔다.

그 갑작스럽고도 거센 공격에 항량의 군사들은 잠시 멈칫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흉갑(胸甲)을 걸치고 방패를 든 선두의 병사들이 덩이지어 맞받아 쳐왔고, 다시 그들을 이끌던 젊은 장수가 물살을 가르듯 진가의 병사들을 가르며 말을 몰아 달려나왔다.

“나는 초인(楚人) 항우다. 이놈, 너도 명색 장수라면 달아나지 말고 이 창을 받아보아라!”

그렇게 소리치며 철극(鐵戟)을 꼬나 잡고 다가오는 그 젊은 장수의 두 눈에서는 불길이 뚝뚝 듣는 듯했다. 진가는 자신도 모르게 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진심으로 자신의 등뒤에 항우가 노리는 다른 장수가 있기를 바랐으나 헛일이었다. 근처에 말을 탄 장수라고는 오직 그 자신뿐이었다.

항우가 자신을 노리고 달려오고 있다는 걸 깨달은 진가는 얼른 칼을 끌어당겨 맞받아 칠 자세를 갖추려 했다. 그러나 항우가 탄 말은 너무 날랬고, 휘두른 철극 또한 너무 세차고 빨랐다. 미처 손쓸 틈도 없이 아홉 자 철극이 한줄기 굵고 긴 화살처럼 그 가슴에 내리 꽂히니, 진가는 비명조차 제대로 질러보지 못하고 말에서 떨어졌다.

대장인 진가가 그 모양으로 죽자 그가 이끌던 장졸들에게는 병략도 기세도 소용없었다. 거기다가 8천 강동병이 저마다 작은 항우가 되어 무섭게 치고 드니 더욱 배겨내기 어려웠다. 오래잖아 무기를 버리고 털썩 털썩 꿇어앉아 목숨만을 빌었다.

“항복하는 자는 죽이지 마라!”

항량이 급히 명을 내려 진가의 군사들을 거두어들였다. 그러나 진가가 왕으로 세운 경구는 다시 용케 몸을 빼내 양(梁)땅으로 달아나고 없었다.

항량은 군사를 풀어 경구를 뒤쫓게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경구 홀몸으로 달아나 찾기도 어려울뿐더러 굳이 찾아야할 까닭도 없었다. 장졸들을 호릉에 머물러 쉬게 하면서 진왕의 생사를 수소문하는 한편 부근에 흩어져 숨어있는 그 세력을 거두어들였다.

거기서 항량의 군세는 다시 부풀어 어느새 10만을 헤아리게 되었다. 기세가 오른 항량은 바로 대군을 서쪽으로 몰아 진나라의 심장부를 찔러가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파발이 달려와 급한 소식을 알렸다.

“장함이 군사들이 율현(栗縣)에 이르렀는데 그 기세가 자못 사납다고 합니다.”

율현은 호릉 남쪽에 있어, 그곳에 장함의 군사가 이른 것은 항량에게는 적잖이 성가신 일이었다. 아무리 서쪽으로 가는 길이 급하다 해도 적을 등뒤에 남긴 체 그냥 밀고들 수는 없었다. 그 때문에 항량이 은근히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별장(別將)인 주계석(朱鷄石)과 여번군(餘樊君)이 나섰다.

“저희들이 가서 장함의 군사들을 두들겨 흩어놓겠습니다.”

여번군은 회계에서부터 데리고 온 사람이었지만, 주계석은 호릉에서 새로 얻은 장수였다. 부리(符離)에서 나고 자란 그는 원래 진승을 본받아 군사를 일으켰으나, 그 밑에 들어가지 않고 따로 떠돌았다. 그러다가 그 무렵 들어서야 항량을 따르게 되었는데, 회계에서 출발한 장수들보다 끼어든 게 늦은 만큼 공을 서두르고 있었다.

하지만 항량에게는 그들이 나서준 것이 반갑기만 했다. 주계석이 마음에 걸렸지만 여번군은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 믿을만한 사람이었다. 두 사람에게 거듭 당부한 뒤 군사 만 명을 떼어주었다.

주계석과 여번군이 떠난 다음 날 이번에는 항우가 항량을 찾아와 말했다.

“서쪽으로 가서 진나라를 쳐 없애는 일도 급하지만, 먼저 동쪽을 평정하여 뒤탈을 없이 하는 것도 그 못지 않게 급합니다. 특히 양성(襄城)은 진나라가 보낸 관리와 군사들이 굳게 지켜 지난 아홉 달 동안 한번도 우리 의군(義軍)들 손에 떨어져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대로 남겨두고 서쪽으로 갔다가는 등뒤를 겨누는 비수 꼴이 되니 반드시 먼저 쳐부수어야 할 성입니다. 제게 군사 만 명만 주십시오. 주계석과 여번군이 돌아오기 전에 양성을 떨어뜨려 뒤탈을 없이 하겠습니다.”

마음은 한없이 급했지만 항량이 들어보니 그것도 그럴듯한 소리였다. 거기다가 자식보다 더 아끼고 믿는 조카가 하는 말이 아닌가. 이에 항량은 다시 1만 군사를 떼어 항우에게 주며 양성을 치게 하고 자신은 그대로 호릉에 머물러 서쪽으로 갈 병마와 군량을 모아들였다.

그런데 주계석과 여번군이 떠난 지 사흘도 안돼 기막힌 소식이 들어왔다. 그들을 따라갔던 군관 하나가 어디서 흠씬 얻어맞고 쫓겨온 수캐 꼴로 돌아와 울먹이며 말했다.

“저희 편이 크게 지고 말았습니다. 군사는 열에 일고여덟이 죽거나 상하고, 여(餘)장군께서는 돌아가셨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좀더 자세히 경과를 말하거라. 그리고 주계석은 어찌 되었느냐?”

그러자 그 군관이 소매로 눈물을 씻으며 사설처럼 늘어놓았다.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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