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오세정/권력자 잘 알면 '人生역전'?

  • 입력 2003년 3월 23일 19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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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인사에서 교수와 학자들을 상당히 중용(重用)하고 있다. 당선자 시절부터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40대 전후의 학자들 위주로 구성하더니 취임 후 정부 인사에서도 학자 출신들을 대거 요직에 임명하고 있다. 특히 발탁된 인사들이 과거처럼 중앙에서 활동하던 명망가들이 아니라 대부분 지방에서 일하던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사람들이어서 가히 파격적이라는 인상을 줄 만하다.

▼지식인 주류도 정권따라 이동 ▼

인수위가 구성되었을 당시 어느 장관이 해당 분과위원 중 이름도 못 들어본 사람이 절반 가까이 된다고 말했다고 하는데 이처럼 새 정부는 과거의 전문가 집단과는 사뭇 다른 인재 풀을 운용하고 있다. 그러기에 인수위가 교수들을 주축으로 한 640여명의 자문위원들을 발표했을 때 일부 신문에서는 “지식인 사회에 신주류가 형성되어 권력이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물론 어느 사회나 적절한 세대 교체와 신진대사는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필요하다. 특히 아직도 봉건적인 위계 질서에 얽매여 동맥경화증에 걸려 있는 한국의 지식인 사회에는 커다란 충격이 좋은 자극제가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모든 사회 문화적 활동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 현실에서 그동안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얻기 어려웠던 지방의 전문가들을 기용하는 것은 전문가 집단의 저변을 확대한다는 의미에서도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작금의 소위 ‘지식인 사회의 권력이동’은 내적 요인에 의해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권력자와의 친소(親疎)관계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와 문제점 또한 잉태하고 있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지식인의 역할은 우리 주위의 자연과 사회 현상들을 이해하고 이를 일반 사람들과 후속 세대에 전달하는 일이다. 따라서 지식인 사회의 ‘권력’은 이 같은 본분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 즉 전문가로서의 ‘실력’에 의해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실제로 미국 물리학계의 예를 보면, 장관급인 대통령과학기술담당보좌관을 역임한 사람이 학계에서 미치는 영향력은 노벨상을 받은 학자에 비해 상대가 되지 않는다. 학계의 진로 결정에서부터 젊은 학자의 교수 임용에 이르기까지, 실력 있는 학자의 한 마디는 권력과 가까운 사람의 말보다도 천만금의 무게를 더 갖고 있다. 또한 지식인의 현실 참여도 이처럼 전문가로서의 탄탄한 실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야 의미가 있고, 사회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아무리 대학교수나 박사라 하더라도 권력자와의 관계를 이용해 자기 전문분야와 상관없거나 능력과 경력에 걸맞지 않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지식인의 현실 참여가 아니라 낙하산 인사의 한 형태일 뿐이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에서는 교수를 비롯한 전문 지식인들의 국제 경쟁력이 떨어져 유능한 인재 양성을 비롯해 지식기반 사회의 발전에 대응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이들이 본연의 임무인 연구와 교육보다 개인의 세속적인 출세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실제로 한국의 지식인 사회에서는 묵묵히 연구에 전념하는 학자보다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사람이 대우받고, 실력 있는 학자보다 정부나 대학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한 사람에게 힘이 쏠리고 있다. 부끄러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기에 지난 대선 때에도 후보별로 줄선 학자들이 많았다고 하지 않는가. 여기에 선거에 이긴 측이 집권자와 코드가 맞는다든지 개인적 인연이 있다든지 하는 것을 전문가 발탁의 주요 기준으로 삼는다면 앞으로도 줄 한번 잘 서서 ‘인생 역전’을 꿈꾸는 사이비 지식인들이 양산되어 지식인 사회가 더욱 황폐화될 위험이 크다.

▼능력이 최종적 척도 돼야 ▼

새 정부는 앞으로 전문가를 발탁할 때 이러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념’과 ‘능력’을 균형 있게 고려한다면 그동안 지역과 이념에서 편중되어 있던 한국 지식인사회가 다양성을 회복하는 좋은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오세정 서울대 교수·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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