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273…손기정 만세!조선 만세!(1)

  • 입력 2003년 3월 23일 18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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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이 돌멩이 좀 봐라, 이쁘재?”

우철은 딸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잠이 들었었나? 새벽녘, 평소보다 15분이나 이르게 삼랑진역까지 왕복 60리를 달린 탓인 모양이다, 잠이 온다, 앉아 있으면 잠들어 버릴 것 같다. 우철은 기우다 만 사각모를 동그란 의자 위에 올려놓고 일어나, 두 손을 들어올리며 기지개를 켰다.

“아버지, 좀 봐라!”

미옥은 두 손바닥에 하얀 돌멩이를 쥐고 있었다.

“어디서 주웠는데?”

“다리 밑에서. 물 속에 있었다.”

미옥은 긴타로(金太郞) 가루 우유 깡통을 열었다. 회색, 검정색, 하얀색 작은 돌멩이, 유리와 벽돌 조각, 여자아이는 조그맣고 예쁜 것들을 모으기 좋아한다, 사내아이는, 사내아이는? 아아, 잠이 쏟아진다,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다.

“아버지, 달리다가 예쁜 돌 있으면 주워다 두가.”

“달릴 때는 발치 안 본다.”

“그럼, 넘어지잖나.”

“안 넘어진다.”

“그라문, 어디 보는데?”

“음, 아무 것도 안 본다.”

“눈감고 달리나?”

“아니재, 눈은 뜨고 달린다. 보이기는 하는데, 잘 보지는 않는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니까네.”

“무슨 생각?”

“…글쎄다….”

딸그락딸그락, 깡통을 흔드는 소리다. 나는 또 눈을 감고 있다, 잠이 온다, 오후 4시에서 6시까지 둑을 달려야 한다. 작년의 5000미터 최고 기록은 16분16초4, 물론 경상도에서는 1위였지만, 조선에서는 4위, 일본 10걸 제20위의 성적이었다. 베를린에는 못 갔지만, 1940년 도쿄에서 열릴 오륜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출전하고 싶다, 그래서 5000과 1만 미터에서 금메달을 딴다. 재작년부터 우근이가 소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매달 60전씩 학비를 내야 하고, 미옥이는 이제 곧 여섯 살, 신태는 한참 먹어대는 세 살, 내년 1월이면 또 입이 하나 는다, 먹고 살 돈을 생각하면 달리고만 있을 수는 없지만, 열심히 달리지 않으면 기록이 단축되지 않는다. 큐우, 파아, 큐우, 파아, 나의 숨소리다. 뇌리에서 빛과 그림자가 밀고 밀리며 쏟아져 들어와, 꿈이 되기 직전에 물보라가 되면서 그 틈을 파고들 듯 하얀 빛이 스몄다. 장도(粧刀)를 거머쥔 커다란 손, 남자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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