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272…1933년 6월8일(17)

  • 입력 2003년 3월 21일 18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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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혜는 잠들지 않기 위해 빌미라도 찾으려는 듯 멍하니 남편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천천히 눈길을 기울이고 눈을 감았다. 옥동자를 낳았으니 환한 마음으로 이부자리에 누워 있어야 할 텐데, 치명적인 중상을 입고 누워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어째서일까.

“내 얼굴 엉망이지예?” 인혜가 눈을 감은 채 물었다.

“아이다.”

“거울 좀 줘 보이소.”

우철은 경대 위에 있는 손거울을 집어 아내의 손에 쥐어주었다. 인혜는 거울을 얼굴 위로 들어올리더니 눈을 뜨고 인상을 찌푸렸다.

“엉망이네예… 당신, 이 거울 기억납니까? 아버님 돌아가셨을 때 입에 대고 숨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했던 거울입니다.”

왜 이런 때 그런 말을 하는지 우철은 이해할 수 없었다.

“집안에 사람이 늘어나도, 없어진 사람의 그림자는 지울 수가 없는가 봅니다…. 새로 아이를 낳아도….”

우철은 뭐라 대꾸해야 좋을지 몰라 인혜의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인혜는 잘려나간 나무처럼 침묵하고, 수피처럼 표정을 닫고 있었다. 우철은 어머니와 아내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을 지금에야 깨닫는다.

“지쳤습니다, 더 이상….” 인혜는 노래를 흥얼거리듯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열도 세기 전에 베개에서 머리가 미끄러져 떨어지고, 간혹 코고는 소리까지 섞인 숨소리가 울렸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하려 했던 것일까. 모르겠다. 아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우철은 자기 안의 조용함에 귀를 기울였다. 자장자장 자는구나 은자동아 금자동아 우리 아기 잠자는데 아무개도 짖지 마라 어머니가 곧잘 불러주던 자장가다. 우리 아기 잠을 잔다 아이고 가사가 생각나지 않는다. 우철은 야들야들한 턱을 내밀고 자고 있는 아들의 손바닥을 집게손가락 등으로 살며시 쓰다듬었다. 행복하기 위해서… 무엇이 빠져 있는 것일까… 모르겠다… 잠이 온다… 잠시 눈을 붙이자… 아내와 아들 곁에서… 잠시만… 눈을 감자. 달릴 때의 율동이 온 몸으로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큐큐파파 큐큐파파 얼굴이 흔들린다 얼굴이 부서진다 얼굴이 튄다. 우철은 그 얼굴의 이름을 불렀다. 이용하 큐큐파파 이소원 큐큐파파 이신태 큐큐파파 큐큐파파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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