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성교수의 뇌의 신비]‘첨단’ 중추신경도 때론 착각

  • 입력 2003년 3월 9일 18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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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세 남성 R는 하마터면 쓰러질 뻔했다.

그는 당뇨병으로 다리 혈관이 막혀 얼마 전 왼쪽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면서 무심코 있지도 않은 자신의 왼쪽 발로 디디려 했던 것이다. 분명 그의 다리는 없는데 이상하게도 그의 몸은 마치 다리가 멀쩡하게 붙어 있는 것처럼 생각했다.

이런 증세는 팔을 절단한 사람에게도 생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팔이 분명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이불을 슬며시 들고 팔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기도 한다. 즉 팔 다리가 없어져도 우리의 뇌는 그것이 있는 것으로 지각한다. 이런 현상을 ‘환상지 현상’이라고 한다. 이런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은 크게 세 가지다.

먼저 말초 신경설이다. 잘린 팔 다리와 붙은 부위에 있는 말초 신경을 마취시키거나 잘라내면 환상지 현상이 사라지고, 자극하면 더 두드러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정신설이 있다. 환상지 현상은 정신적 스트레스가 있을 때 더 심해지고, 정신치료나 수면치료로 사라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중추 신경설이 있다. 절단된 팔, 다리의 반대쪽 뇌에 뇌중풍이나 종양 같은 질병이 생긴 후 환상지 현상이 사라졌다는 보고가 있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 이론은 모두 일리가 있지만 마지막 중추신경설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네덜란드의 프레데릭스 교수의 주장은 이렇다. 백내장 같은 병으로 세상이 잘 안 보이게 되면 시각적 환상을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즉 잘못된, 혹은 불충분한 시각자극이 시각중추로 전달되면 시각중추는 오히려 더욱 흥분하여 환각 증세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팔, 다리가 절단되면 이들로부터 뇌로 향하는 정상적인 감각이 차단되지만, 이때 뇌의 감각 중추는 오히려 더욱 흥분되어 환상적인 감각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환상지 현상을 갖는 환자에게 진짜 문제가 되는 것은 이들 중 일부에서 있지도 않은 그들의 팔, 다리에 통증이 생긴다는 사실이다. 이를 ‘환상지 통증’이라고 부른다.

이런 통증이 생기는 과정 역시 오리무중이지만 이 경우에도 중추 신경에서 감각을 담당하는 세포가 지나치게 예민해진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다. 환상지 혹은 환상지 통증이 생기는 정확한 원인은 신경과학자들에게 아직도 환상으로 남아있다.

울산대 의대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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