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화제]역대 대통령과 스포츠

  • 입력 2003년 2월 28일 17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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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통령들의 스포츠에 대한 관심은 어느정도 일까. 제16대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을 계기로 체육계에선 과연 노대통령이 얼마나 스포츠에 관심을 기울일지 궁굼해 하고 있다. 노무현대통령은 한 때 요트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대통령의 스포츠정책에 대한 공약은 스포츠산업육성과 생활체육 확대. 역대 대통령들은 본인이 직접 스포츠를 즐기는 경우도 있었고 그 관심도에 따라 많은 에피소드를 낳기도 했다. 각 대통령 재임기간 중의 주요 체육정책과 그 에피소드 등을 알아본다.


▽이승만 박정희대통령=초대 대통령 이승만 대통령(1948∼60년 재임)은 스포츠에서도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그는 전통무술 택견의 고수를 불러 경무대에서 시범을 보이도록 했다. 그러나 해방 이후 6·25를 겪는 등 혼란속에서 별다른 체육정책을 이끌지는 못했다.

국가지도자가 체육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을 보인 것은 박정희 대통령(1963∼79년 재임) 때부터. 한국선수들이 세계무대에 나가 좋은 성적을 올리기 시작했다. 66년 한국 최초의 프로복싱 세계챔피언 김기수가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WBA주니어미들급 타이틀을 획득했다. 당시 66연승을 달리고 있던 챔피언 벤베누티(이탈리아)는 서울 원정경기를 하는 대가로 당시로서는 엄청난 금액인 5만5000달러의 대전료를 요구했다. 김기수는 이 돈을 구할 방법이 없어 애를 태웠다. 복싱팬이기도 했던 박대통령은 이 사정을 듣고 정부가 직접 대전료에 대한 지불보증을 서 주도록 지시했다. 정부가 개인의 프로복싱대전료 지불보증을 서 준 것은 당시 국내외에서 큰 화제가 됐다.

이밖에 66년 장창선이 미국 톨레도에서 열린 레슬링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 한국 최초의 세계선수권자가 되었다. 76년엔 양정모가 몬트리올올림픽 레슬링에서 한국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을 따내자 박대통령은 국위선양을 위한 엘리트스포츠에 큰 관심을 갖게 됐다. 박대통령은 곧바로 한국체육대학을 만들 것을 지시했고 1977년 한국체대가 정식 개교했다.


▽전두환 노태우대통령=엘리트스포츠가 활짝 꽃을 피웠던 시절이었다. 전두환대통령(1980∼88년 재임)은 86아시아경기대회와 88올림픽의 서울 유치가 확정되면서 82년 체육부를 신설했다. 스포츠과학연구소를 확대하고 꿈나무 선수들을 적극 지원했다. 1984년에는 국군체육부대(상무)가 창설됐다. 이같은 지원속에 한국은 스포츠강국으로 떠올랐다. 한편 82년 프로야구와 83년 프로축구가 출범했으며 전대통령은 심판으로 가장한 경호원과 함께 마운드에 올라 프로야구 개막전 시구를 하기도 했다.

육군사관학교시절 축구를 했던 전대통령은 축구광. 경기장에 갈때면 해박한 축구지식을 자랑했고 때로는 그 자리에서 감독을 불러 직접 작전을 지시하기도 했다. 예정된 시간을 넘기면서 축구관람을 하기도 해 경호팀에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그는 또한 복싱팬으로서 당시 군부대에서의 복싱대회를 장려하기도 했다.

노태우 대통령(1988∼93년 재임)은 88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렀다. 노대통령 시절에는 일방적인 엘리트체육지향에서 서서히 생활체육활성화쪽으로 정책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1991년 국민생활체육협의회가 창설됐고 노대통령 자신도 틈나는 대로 테니스를 즐겼다.


▽김영삼 김대중대통령=김영삼 대통령(1993∼98년 재임)때는 엘리트스포츠 정책 비중이 줄기 시작했다. 체육업무는 문화와 체육을 함께 관장하는 문화체육부속에 흡수됐다. 그러나 그것도 문체부 출범당시 체육담당 3개국이 94년에는 2개국으로 줄었다. 김영삼대통령 개인적으로는 등산과 조깅을 즐겼다. 통영중 재학시절 축구선수였던 그는 외국에서 승리한 대표팀을 격려하다 코너킥을 페널티킥으로 잘못말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편 골프를 자제하겠다고 말해 공직자들 사이에 골프금지 분위기가 일기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1998∼2002년 재임)시절에는 정부내의 체육기구가 더 축소됐다. 체육업무는 문화관광부속에 흡수됐고 부처 명칭에서도 아예 ‘체육’이라는 말이 빠졌다. 체육담당 부서는 1개국으로 줄었다. 그러나 월드컵이 성공리에 치러져 국가홍보에 큰 효과를 보았다.

이원홍기자 bluesky@donga.com

● 盧대통령 공약에 대한 체육계 반응

“생활체육이냐 엘리트체육이냐.”

노무현대통령이 민주당 대통령후보였던 지난해 12월 3일 서울 종로에 있는 한 볼링장에서 주부 볼링회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볼링을 하고 있다. 노대통령 취임 후 생활체육은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노무현 대통령의 스포츠정책 공약은 스포츠산업육성과 생활체육 확대.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정부조직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현재 문화관광부 체육국 45명의 직원이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을 모두 담당하고 있다. 체육부 시절 187명이 하던 일을 45명이 하고 있어 일상적인 기존 업무량만도 숨이 턱에 차도록 넘친다는 것이 관계자의 하소연. 부서의 실질적인 권한이 적어 그 실행가능성도 의문이라고 말한다.

한편에선 엘리트체육을 등한시 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엘리트체육은 올림픽과 월드컵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국가 이미지선양을 위해 필요하며 또한 국민들의 사기를 높인다는 차원에서도 필요하다는 것. 엘리트체육이 잘 돼야 생활체육도 활성화된다는 논리다.

생활체육은 선진국의 예에서 보듯 결국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관심을 갖고 참여해야 활성화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적인 특수성이 있다. 국민대 체육과 김창규교수는 “생활체육활성화를 위해 한국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학교체육활성화”라고 주장한다. 국내 청소년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기 때문에 학교에서의 체육활동이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 그러나 입시에 매달리다 보니 체육시간에도 다른 공부를 하는 등 학교체육활동이 갈수록 위축돼 큰일이라고 지적한다. 이같은 결과로 청소년들이 덩치만 크고 체력은 약해지고 있다는 것. 김교수는 “하루빨리 교육부내에 학교체육을 전담하는 부서를 만들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원홍기자 bluesky@donga.com

● 외국의 대통령은?

외국 전현직대통령 중에도 ‘스포츠광’이 많다.

제럴드 포드 전 미국대통령은 고교시절 미식축구 선수. 그는 대학시절까지도 미식축구 선수생활을 했다. 자신이 직접 스포츠를 즐기던 대통령으로는 폴란드의 알렉산데르 크바스니에프스키 대통령도 있다. 학창시절 축구를 했던 그는 열렬한 축구광. 지난해 한국에서 열린 월드컵 때는 폴란드 축구대표팀에게 대통령 전용기를 내주기도 했다. 체육부장관 올림픽위원회위원장 등을 지낸 그는 폴란드대표팀 올리사데베의 귀화를 직접 이끌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도 정상회담 도중 시간을 내어 프로축구 경기결과를 알아봤을 정도로 축구광.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은 골프광으로 시간나는 대로 필드에 나갔다. 골프스타들을 백악관으로 자주 초청해 골프로 이야기 꽃을 피우기도 했다. 부시대통령은 야구광으로 백악관내에 야구시설을 갖추기도 하고 야구스타들을 백악관으로 불러 만찬을 베풀기도 했다.

이원홍기자 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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