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3년 1월 23일 18시 54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고객이 돈을 맡기면서 ‘혹시 은행이 떼먹지 않을까’하고 의심한다면 아무도 돈을 맡기지 않을 것이고 은행은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어진다.
따라서 은행은 고객에게 ‘내가 맡긴 돈은 떼이지 않고 원래 약속한 이자를 받을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을 줘야 한다.
여기에는 고객이 은행원을 믿는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금융업이 다른 업종에 비해 훨씬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은행원은 고객에게 신뢰감을 주기 위해 항상 단정한 옷차림으로 근무하기도 한다.
한국의 은행원은 외환위기를 거치며 큰 아픔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은행원이 신념을 갖고 지켜야 할 도덕성을 헌신짝처럼 저버리는 일이 흔하게 벌어졌다. 특히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일수록 고객 돈을 빼돌리거나 고객정보를 외부에 파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우리은행에서 발생한 사상 초유의 현금카드 불법복제 사건도 결국 내부직원의 소행으로 드러났다. 우리은행은 외환위기 이후 국세횡령 고객예금횡령 불법주금납입 등 온갖 금융사고에 연루돼왔다. 이덕훈 우리은행장은 올해 초 우리은행이 ‘금융사고의 온상’이라는 비판을 받자 ‘2003년은 윤리경영의 해’로 삼겠다며 각종 내부통제장치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아무리 정교한 감시장치와 윤리지침을 만들어도 직원들의 도덕불감증을 해소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은행원이 고객과의 약속을 저버리면 자연히 고객은 은행을 떠나고 그 은행은 설자리를 잃게 된다.
우리은행은 올해 고객서비스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1조원의 이익을 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직원들의 도덕불감증을 어떻게 치료할지부터 고객에게 설명해야 한다. “직원이 수천명 되다 보니 별별 사람이 다 있다”는 식으로 이해를 구하려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김두영기자 경제부 nirvana1@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