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신라의 마음 경주 남산

  • 입력 2002년 12월 27일 18시 00분


경주 남산의 작은 골짜기 ‘불곡’은 이렇다 할 기암괴석도 없고 산세가 수려하지도 않다. 단지 산을 보기 위해 오르는 등산객이라면 매력을 찾아볼 수 없는 곳이다. 이 골짜기를 300m 정도 오르면 불곡을 유명하게 만든 불상 하나와 만나게 된다. 높이 3.2m, 너비 4.5m의 바위를 60㎝ 정도 파내 방을 만든 뒤 그 안에 불상을 조각해 앉혔다. 이 불상은 6세기말이나 7세기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있는 불상의 얼굴은 자애로운 어머니 또는 수더분한 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과연 이런 온화한 얼굴이 신라인이 표현하고자 했던 불상의 원래 모습일까. 저자는 이 불상에서 어머니, 또는 할머니를 연상하는 것은 “착시현상일 뿐”이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풍파를 거치면서 코와 입술이 마모되는 바람에 그렇게 보인다고 주장한다. 원래의 불상은 눈을 감고 조용히, 그러나 치열하게 사색하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경주 남산은 흔히 ‘노천 박물관’으로 불리는 신라 불교 문화재의 보고(寶庫)다. 남산 곳곳에 자리잡은 수많은 불상과 석탑은 신라의 향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남산에 대해서라면 보고서도 많고 소개서도 많다. 최근엔 찾는 사람들도 부쩍 늘었을 정도로 남산은 우리에게 가깝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남산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착각에 빠진 것이다.

이 책은 남산에 대한 선입견을 철저하게 배제한다. 남산의 66개 주요 유적을 꼼꼼히 되짚으며 저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또는 잘못 알고 있었던 상식을 새삼스럽게 일깨우고 그것들을 감상하는 방법까지 친절하게 소개한다.

저자는 경주에서 나고 자랐지만 객관성을 잃지 않은 시선으로 남산을 바라본다. 오늘날 남산에는 본래 유물의 10%밖에 남아있지 않다고 그는 말한다. 남산이 위대한 이유는 현재의 모습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품고 있는 미지의 90%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현재 남아있는 것들이 최고인양 착각해 작품성이 떨어지는 불상까지 ‘소박하기 그지없는 작품’으로 무리하게 떠받드는 오류를 경계한다.

이 책의 절반은 사진. 세월과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유물의 다양한 모습을 포착한 아름다운 장면들은 이 책의 또 다른 미덕이다. 작가는 사진 옆에 촬영 날짜는 물론, 시각까지 적어 넣어 작가가 느꼈던 ‘찰나의 감동’을 함께 나눴다.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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