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런 경로연금 왜 만들었나

  • 입력 2002년 12월 26일 18시 23분


저소득 노인층에 돌아갈 경로연금 402억원이 집행되지 않은 채 낮잠 자고 있다니 어이가 없다. 그것도 부득이한 이유에서가 아니라 지급대상자 선정방식이 까다로워 담당공무원이 소극적으로 나눠주기 때문이라니 더욱 말문이 막힌다. 연금을 받아야 할 노인이 내 부모라면 아무리 절차가 복잡하다 해도 있는 돈을 묵혀둘 수 있는지 따져 묻고 싶다.

노인복지법에 따르면 노인 본인 외에도 배우자, 부모 자녀 손자녀와 그 배우자, 생계를 같이하는 형제자매 등 모든 부양의무자의 소득과 재산을 합한 금액이 일정기준(4인 기준 월 소득 194만4000원, 재산 5040만원) 이하여야 연금을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공무원은 손자녀 재산까지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일부 노인들은 월 3만5000∼5만원 때문에 자손들을 번거롭게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연금을 안 주고 안 받아 왔다.

어려운 노인들을 실질적으로 돕기 위해 마련된 경로연금이 이 같은 행정적 불편 탓에 집행되지 않았다는 것은 묵과될 수 없다. 더구나 2000년과 2001년에도 각각 150억원 안팎이 지급되지 못했는데 지금까지 아무런 개선이 이뤄지지 않은 것도 용납되기 어렵다. 보건복지부는 자녀 등 실질적 부양의무자의 소득과 재산만 기준으로 삼도록 서둘러 선정기준을 완화하고 집행해야 마땅하다.

차제에 사회변화에 맞는 노인정책 수립에 힘써야 한다. 65세 이상 노인인구의 비율이 7.9%인 ‘고령화사회’임에도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못 받는 노인이 75%나 될 만큼 노인복지대책이 허술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전통적 효 사상과 경로의식에만 노인 부양을 맡기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사회가 어르신의 삶의 질을 책임져야 할 때다. 노무현 대통령당선자는 현재 4000억원인 노인복지 예산을 3배 이상 늘리고 노인 일자리 50만개 창출, 경로연금 대상 및 금액 확대 등을 공약했었다. 다른 공약은 다 잊더라도 노인관련 공약만은 반드시 약속대로 실천하기를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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