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

  • 입력 2002년 12월 20일 17시 50분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이옥순 지음/232쪽 9800원 푸른역사

인도는 ‘정신의 나라’인가? 그럴 수는 없다. 가난해도 행복했으면 좋겠지만 우리가 그렇지 않은데, 인도 국민들은 그러리라는 기대는 무모하다. 그런데 왜 인도에 가면 인생이 달라지고, 깨달음을 얻으려면 필리핀도 뉴질랜드도 아닌 인도로 가야 한다고 사람들은 생각할까? 이 책의 저자에 따르면,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인도가 시간이 멈춘 명상의 나라였으면 좋겠다는 욕구에서 나온 상상이요 착각이다. 인도를 신비화하는 책들에 불만이 많았던 나는 이 지적에 동의한다.

타자를 규정하는 것은 곧 자신을 규정하는 것이다. 유럽인은 동양을 괴물로 만들면서 인간이 되었고(사르트르), 영국은 인도를 비합리적인 원시와 야만으로 규정함으로써 진보적이고 합리적인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려 했다.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인도에 대한 인상은 19세기 제국주의 영국이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날조해낸, 인도는 과거에 묶여 발전의 가능성이 없는 나라라는 박제된 이미지이다.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현실의 인도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편견이고, 인도 사람 입장에서 보면 모욕이다. 베일을 쓴 신비로운 인도, 여성스럽고 몽상적인 이미지는 일제가 식민지 조선을 묘사했던 ‘한의 정서’니 ‘소복 입은 여인의 아름다움’ 따위와 비슷하다.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 에서 저자는 우리가 인도를 보는 시각에 ‘복제된 서구인의 시각’ 이 들어있다고 말한다. 갠지스강에서 몸을 씻는 힌두교도들./동아일보 자료사진

저자는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이라는 개념을 빌려 우리의 그런 인도관을 ‘복제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부른다. 동양인인 우리가 서구의 시각을 복제해 인도가 우리보다 더욱 순수하게 동양적이며, 또 그래야만 진짜 인도라고 몰아붙인다. 그러는 우리의 마음 속에는 우리보다 못사는 인도와 차이를 둠으로써, 과거 근대 서양식 문물에 지배당했던 아픈 기억을 지우고 서구와 자신을 동일시하려는 욕구가 있다. 그러나 우월한 서양과 열등한 동양이라는 이 구도에서 결국 우리는 동양일 수밖에 없으므로, 자신을 부정하고 우리 내면을 식민지로 만들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나는 서양과 동양의 이분화를 교란시키는 전략에 관한 저자의 주장이 모호하다고 느낀다. 인도를 배경으로 한 문학작품 분석에 있어서도 의견이 다르다. 타자를 대상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문학에 대한 궁극적인 요구다. 그 지고한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해서 좋은 문학작품이 아닌 것은 아니다. 예컨대 여성을 타자로 놓고 남성이 성장하는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혐의로 보자면 문학사에서 안전한 작품은 별로 없다.

나는 문학사를 텅 비우기보다는 그 작품들이 성취한 다른 장점을 인정하고 싶다. 인도나 인도인들에 대한 작품들도 마찬가지다. 인도에 가서 자기가 찾던 인생의 해답이 자신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은 작가 혹은 작중인물들에게, 왜 인도와 소통하지 않았느냐고 꾸짖는 것은 지나치지 않은가? 내가 보기에 그들 작가의 관심은 인도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있었다. 그리고 열대지방의 가난한 사람들을 ‘헐벗은 인간’ ‘벌거숭이 아이들’이라고 표현하는 것조차 ‘옷차림에 까다로운 우리의 유교적 유산을 반영하는 절대주의의 시선’이라고 화낸다면,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옷을 덜 입은’이라고 해야 하나? 갑갑한 비난들이 나는 거슬린다.

오수연 소설가 sohoj@ne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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