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 만나는 시]차창룡 ‘나무 물고기’

  • 입력 2002년 12월 13일 18시 16분


천왕봉 정수리에 흰눈이 쌓여 아침나절에는 눈이 시리시겠습니다. 스님, 청안하신지요. 물난리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겨울입니다. 번잡한 서울 거리를 쏘다니다가 빌딩 사이로 하얀 낮달이 보이면, 먼 데를 바라보시던 스님의 그윽한 눈동자가 떠올라 퍼뜩 정신을 차리곤 합니다.

젊은 시인 차창룡씨가 며칠 전 새 시집을 펴냈습니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았습니다. ‘나무 물고기’(문학과지성사). 얼른 목어(木魚)를 떠올렸는데, 틀리지 않았습니다. 산사 기행이라는 부제를 달아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시인은 호남 일대의 사찰을 순례하고 있습니다. 내소사에서 선운사, 선암사, 개심사를 거쳐 무량사에서 예불을 드리는가 싶더니 다시 서울 동북쪽 창동역에서 비둘기들을 만나다가, 또 홀연 목탁과 목어 속으로 들어갑니다.

저잣거리에서는 활발하다고 말하지만, 산문에서는 ‘활발발’하다고 하지요. 자유자재한 역동성을 이르는 것이겠는데, 스님, 이 시인의 언어와 상상력이 정말 활발발합니다. 나무 물고기처럼 잠들지 않고 늘 두 눈 부릅뜨고 깨어 있으려 하는 까닭이겠지요. 시들이 아주 빠른 속도로 읽힙니다. 스님께선, 모든 것을 빠르기로 측정하는 이 속도 지상주의 시대에 이제 시 읽기마저 ‘과속’이란 말인가,라며 허허 웃으실 테지만, 잘 쓰여진 시는 의외로 술술 잘 읽힙니다.

‘선암사 목어’라는 시가 있습니다. 시의 화자가 어느 날 깨어보니 ‘등에 커다란 나무가 솟아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몸은 ‘잉어’로 변해 있었습니다. 잉어는 내장을 다 빼내고 뱃속에다 ‘아름다운 소리를 내장한 허공’을 집어넣습니다. 그러고 보니 스님, 목어며 목탁, 범종이며 법고, 풍경에 이르기까지 절집 ‘악기’들은 모두 속이 비어 있었습니다. 자기 내부를 비워야 가득 채울 수 있을 뿐 아니라, 세상을 일깨울 수 있다는 가르침이 저 악기들 자체에 깃들어 있었습니다.

시집에서 목어와 목탁은 곧 시인의 자의식 혹은 자화상입니다. 이 눈멀고 귀가 막혀 있는, 그리하여 기가 막힌 세상을 향해 자기를 텅 비우고, 제 몸을 두드리겠다는 서늘한 각오입니다. 범종과 같이, 목어도 제 소리를 더 멀리 울려 퍼지게 하기 위하여 자기 자신은 더 아파야 합니다. 하지만 그 다짐들이 그렇게 심각한 편은 아닙니다. 시어가 유연하고 경쾌하며 또 훤칠합니다. 신화적이고 우주적인 상상력을 시의 엔진으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님께서 늘 강조하시는 연기론(緣起論)도 육화하고 있는데다, 우주는 어느 것 하나 연관되지 않은 것이 없다는 화엄적 사유까지 동반하고 있습니다.

소의 눈망울을 닮은 눈을 가진 시인은 인도 여행길에 ‘느릿느릿한 소는 교통사고로 죽는 일이 드문데, 민첩한 개와 염소는 무수히 차에 치인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바쁜데 왜 바쁜지도 모른 채 밤낮없이 서울 거리를 쏘다니는 저희 같은 삶들이 바로 ‘민첩한 개와 염소’가 아닐까 싶습니다, 스님. ‘나무 물고기’를 며칠 가방에 넣고 다녔는데, 가방 속에서 목어 두드리는 소리가 나는 듯한 환청에 시달렸습니다. 사나흘 환하게 깨어 있었지요. 흰눈을 뒤집어쓴 천왕봉이 스님 두 눈동자 안에 들어가 빛나고 있을 것 같은 아침입니다. 청안청락하십시오.

이문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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