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합동토론]李 “쌀개방 늦춰야” 盧 “농업대책 먼저”

  • 입력 2002년 12월 11일 00시 02분


▼무역-농업 개방▼

이날 토론에서 세 후보는 무역개방 및 개방에 따른 농업피해 대책 등을 놓고 열띤 공방을 벌였다.

개방 자체에 대해서는 이, 노 후보가 불가피성을 인정했으나 권 후보는 “개방이 무분별하게 이뤄지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해 뚜렷한 시각차를 보였다. 세 후보는 농가부채 해결 등 특단의 농업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으나 구체적인 해법에는 차이가 있었다.

권 후보는 “김대중(金大中) 정권이 아무 대책도 없이 개방정책을 이행했다. 개방으로 벤처 굴뚝산업이 망했다. 개방지상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공격했다. 그는 “개방은 신자유주의다. 금융을 개방하고 공기업 매각하고 노동자 해고하는 게 개방인데, 이것을 근사한 용어로 포장한 것이다”고 비판했다.

이 후보는 “세계화 물결을 따를 수밖에 없다. 똘똘 뭉쳐 우리끼리 살자는 게 가능하느냐”며 “개방하되 농업 축산업 전통문화 등 지킬 산업은 지키며 개방에서 오는 국가 이익을 챙기는 게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노 후보도 “개방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개방 때문에 벤처기업 굴뚝산업이 망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개방하지 않았다면 경제적으로 심각한 상황이 초래됐을 것이다. 신자유주의를 말하는데 그런 주의나 이론 갖고 말할 게 아니다”며 권 후보와의 차별성을 강조했다.

이어 농가부채를 비롯한 농업 문제가 주요 이슈가 됐다. 권 후보는 “개방의 가장 큰 피해자는 농민이다. 쌀을 지키지 못하면 농촌이 무너진다. 세 후보가 2004년부터 시작되는 쌀 관세화 유예를 특별결의하고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의 국회 비준을 거부하자. 농가부채는 국가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후보는 “통상외교력을 발휘해 쌀 관세화를 미루도록 최대한 노력할 것이다. 여야간 초당적으로 시장개방 논의기구를 만들어 개방을 어느 정도 할 것인지, 손실보전을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하겠다”며 “공적자금을 회수해 농가부채를 정리하는 데 쓰겠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노 후보는 “농민 피해에 대해 사전 대책을 먼저 세우고 개방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개방조약이 발효되지 않도록 제도를 만들겠다. 이를 위해 개방 이행 보장 법률을 만들어 피해를 막겠다”고 공약했다.

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

▼집값-주택 문제▼

세 후보 모두 주택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할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있었으나 해법은 서로 달랐다.

이회창 후보는 “이사철이 되면 집을 구하지 못해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갓 출발하는 젊은 신혼부부들이 집을 장만하는 데 11년이나 걸리는 것은 큰 문제다”며 “다음 정부가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바로 주택문제다”고 말했다. 그는 “주택문제는 공급을 늘리는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다”면서 “다음 대통령 임기 내에 230만호를 공급할 것이며 이 가운데 90만호는 공공임대주택으로, 30만호는 공공분양주택으로 정해 주택난을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노무현 후보는 주택문제 해법을 자신의 행정수도 이전 공약과 연결시켰다. 그는 “서울 강남의 비싼 집값이 서민생활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 서민을 위해서라도 행정수도를 옮겨야 한다”며 “수도권이 이렇게 과밀해서는 집값 상승을 막기 어렵기 때문에 이를 해소하고 교통문제도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방분산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권영길 후보는 “주택보급률이 100%가 넘는데도 무주택자가 50%를 넘는 것은 한 사람이 두세 채의 집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며 “여러 채를 가져도 돈벌이가 안 되도록 부동산 투기를 강력히 규제하고, 국가 주택공급체제를 갖춰 돈 없어도 주택 걱정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윤종구기자 jkmas@donga.com

▼조세정책▼

이날 토론회에서는 예상과 달리 법인세 인하 문제 같은 조세정책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지 않았다. 민노당의 대표적 경제정책인 ‘부유세 신설’에 대한 권영길 후보와 이회창 후보간의 짧은 토론이 전부였다.

권 후보는 “이 후보도 빈부격차 해소의 중요성을 이야기해왔다. 민노당은 5만명에게 부유세 11조원을 걷어서 무상 교육, 무상 의료 혜택을 주자는 것인데 이 후보는 구체적 빈부격차 해소책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이 후보는 “부유세 신설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모든 자산에 대한 정확한 가치를 평가하는 시스템이 잘 안 돼 있기 때문에 지금 도입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 후보는 이어 “현행 종합토지세, 재산세가 실질적으로 부유세와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현 세제 아래에서 (부유세 도입의) 그런 취지를 지향해 가면 되지 않느냐”고 맞받았다.이에 권 후보는 “한나라당은 최고위원 7명이 700여억원을 가지고 있어서 부유세 신설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라고 맞받았고, 이에 이 후보는 “그 취지는 좋지만 현실적 문제가 있다는 것”이라고 거듭 반박했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상대방 불가론▼

한나라당 이회창,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10일 TV토론에서 ‘상대후보 불가론’의 논거를 조목조목 제기하며 한판 대결을 벌였다.

노 후보는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 보도를 인용해 이 후보를 선제 공격했다. 그는 “이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재벌들이 살아나고,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을 반대하는 ‘청개구리’ 정책을 펼 것으로 보여 경제위기가 올 수 있다는 언론보도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 후보는 “내가 만난 외국인투자자는 인기영합주의에 치우치지 않는 내가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펼 것으로 봤다”고 응수하면서 “노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증시불안으로 외국자본이 빠져나간다는 말이 있다”고 반격했다.

이 후보는 또 “내가 당선돼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동북아특수가 생기므로 연 7% 경제성장이 가능하다”는 노 후보의 주장을 “김대중 대통령의 ‘남북한 특수’ 약속과 똑같다”며 “과연 그런 특수가 있었느냐”고 꼬집었다.

노 후보는 토론 말미에 “대결적인 이 후보는 전쟁불안, 정치보복 불안을 불러서 경제가 불안해진다. 대북 강경정책으로 외국인투자자가 발길을 돌릴 것이다”고 거듭 공격했다. 이에 이 후보는 “남북관계에 대결을 초래한 핵개발 중단을 요구하는 지도자가 불안하다는 말이냐”며 반박했다.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답변태도▼

경제분야 TV토론을 지켜본 경제전문가들은 대선후보들이 표를 의식해 선심성 정책들을 내놓아 각 후보의 정책 차이가 비교적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특히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기업경쟁력 강화에 대해서는 거의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후보들이 임기 중에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 공약을 내놓기보다는 장기적이고 비현실적인 주장을 많이 해 첨예한 대립을 빚은 쟁점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성균관대 김민성(金玟成) 경제학부 교수는 “재벌개혁 가계부채 노동시장 등 큰 주제는 대충 짚었으나 임기 안에 책임지고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은 별로 없었다”면서 “경제기반을 구축하고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 당장 무엇부터 해야 한다는 진지한 지적이 모자랐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그러나 경제성장 전략에 대해서는 이회창 후보는 교육과 연구개발에 초점을 둔 반면 노무현 후보는 동북아 특수에 무게를 두어 차이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경희대 안재욱(安在旭)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시간이 짧다는 제약은 있지만 구체적인 토론이 이뤄지지 않아 아쉽다”면서 “시급한 현안인 가계부채 문제만 해도 토론이 겉도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이 후보와 노 후보가 총론에서는 시장경제를 통한 국가경쟁력을 강조하면서도 각론에 들어가서는 명확한 인식을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비쳤다”면서 “경쟁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는 대신 재벌을 인위적 개혁대상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안 교수는 또 “세 후보가 내세운 공약의 실현가능성도 유권자들이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비현실적 공약의 사례로 이 후보의 국내총생산(GDP)의 7%를 교육분야에, 3%를 과학기술분야에 투자하겠다는 공약과 노 후보의 행정수도 충청권 이전론을 들었다. 안 교수는 “경제문제는 하나를 얻으려면 다른 것을 잃게 마련인데 후보들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다고 주장해 토론의 초점이 흐려졌다”고 설명했다.

LG경제연구원 김기승(金基承) 연구위원은 “기업가정신은 경제발전의 중요한 초석인데도 세 후보 모두 인기에 영합해 기업인을 몰아붙인 인상이 짙다”고 지적했다. 외환위기의 원인에 대해서도 “후보들이 정경유착과 재벌문제만 강조해 진단이 심층적이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김광현기자 kkh@donga.com

천광암기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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