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즈칸의 길①/ 유라시아 원정로 대탐사 ] 1만 5㎞ 대장정

  • 입력 1997년 4월 1일 08시 08분


<<동아일보사는 대우가족의 협찬, MBC와의 공동기획으로 「칭기즈칸 원정로 대탐사」에 나서 창간 77주년인 오늘부터 주1회씩 이를 연재한다. 이번 탐사는 인류역사상 전무후무한 세계제국을 건설했던 칭기즈칸의 원정로를 따라 유라시아 14개국(몽골 중국 러시아 키르기스 카자흐 우즈베크 투르크멘 이란 이라크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그루지야 우크라이나 폴란드)1만5천㎞를 이동하는 대장정이다.

지난 1월부터 오는 7월까지 계속되는 탐사는 한―몽골 합동조사단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조사단에는 몽골측에서 과학아카데미 오치르 역사연구소장과 몽골한국학회 체빈도르지 회장 등이, 한국측에서 김호동(김호동·서울대 부교수·동양사학) 류원수(유원수·한국외국어대 역사문화연구소 연구원·몽골학) 이개석(이개석·경북대 부교수·동양사학) 최한우(최한우·호서대 조교수·해외개발학) 김지인(김지인·서울대 대학원생·고고미술사학)씨 등 젊은 연구가와 취재기자들이 참가했다.>>

세계적인 시사주간 「타임」지는 세계사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인물로 칭기즈칸을 선정했다. 알렉산더도 나폴레옹도 예수나 석가모니도 칭기즈칸에게는 밀렸다.

칭기즈칸 이후 몽골은 그때까지 초원 한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조그만 부족의 이름에서 대제국의 건설자로 인류사에 굵은 획을 긋는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됐다. 변화된 것은 몽골 자신만이 아니었다. 인류역사도 더이상 과거와 같은 것일 수 없었다. 유럽은 유럽대로, 중동은 중동대로, 동아시아는 동아시아대로 새로운 시대 즉 하나의 정치경제적 헤게모니 아래에 통합된 「팍스 몽골리카」(Pax Mongolica)의 시대를 맞이했다.

칭기즈칸과 그의 후계자들은 많은 도시와 문명을 파괴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들은 좁은 지역세계의 울타리를 허물었고 다른 세계에 대한 무지와 미망도 날려버렸다. 이 시대에 중국을 다녀간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이 유럽에서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지킨 사실은 유럽이 그동안 외부세계로부터 얼마나 차단돼 있었으며 그에 대한 정보를 얼마나 목말라했는지를 입증한다.

또한 이란의 몽골궁정에서 재상을 지낸 라시드 웃 딘이 저술한 「집사」(集史)라는 책은 유라시아의 거의 모든 민족들의 역사를 망라한, 진정한 의미에서 세계최초의 세계사였다. 그런 의미에서 몽골제국의 탄생은 세계사의 새로운 탄생이었고 출발이었다.

몽골인은 자기들이 「탱그리(하늘)의 명령을 받고 태어난」푸른 늑대와 흰 사슴의 후예라고 생각했고 칭기즈칸과 그의 후계자들은 이 탱그리의 축복을 받아 세계를 지배하는 군주가 되리라고 믿었다. 그들이 외국의 군주에게 투항할 것을 요구하며 편지를 보낼 때도 항상 탱그리의 명령을 근거로 삼았다. 그 좋은 예가 고려에 보낸 서한이다.

이 글은 「天底氣力 天道將來底言語 所得不秋底人 有眼할了 有手沒了 有脚子了」로 시작하는데 이제까지는 정확한 의미를 밝히지 못했다. 그러나 수년전에 타계한 몽골어의 대가 클리브스 교수는 이 문구를 다음과 같이 교정하고 뜻을 해석했다. 「天底氣力裏 道將來底言語 所得不投底人 有眼할了 有手沒了 有脚子了」, 즉 「하늘의 힘에 (기대어) 내가 하는 말. (우리는)투항하지 않는 사람을 잡아 눈이 있는 자라면 멀게했고 손이 있는 자라면 없앴으며 다리가 있는 자라면 분질러 버렸다」.

무시무시한 내용이다. 이 글에서 우리는 지구 끝까지 정복하고 말겠다는 그들의 의지, 저항하는 어떠한 적도 용서치 않겠다는 그들의 결의를 읽을 수 있다.

그렇지만 「칭기즈칸의 몽골제국」은 세계사에서 풀기 힘든 하나의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몽골초원에 흩어져서로 죽기 살기로 전쟁만하던 유목민들을 그가 통일한 것은 1206년. 이때 그의 휘하에 들어온 몽골 유목전사들의 숫자는 모두 합해도 10만명을 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소수의 몽골군은 그보다 수백배가 넘는 중국을 정복했다. 그들의 말발굽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알타이 산맥을 넘어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의 여러 도시들을 완전한 페허로 만들었고 러시아와 유럽의 기사단들도 그들의 적수는 되지 못했다.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그들은 난생처음 밟는 땅에서 전쟁을 했지만 군대의 배치 진격 귀환은 모두 시계바늘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됐다. 상세한 작전지도가 있을리 만무했던 그 당시에 이러한 정보는 어떻게 얻을 수 있었을까.

더구나 칭기즈칸이 시작한 몽골의 세계정복전은 그의 죽음으로도 끝나지 않았다. 그의 아들 손자에 이를 때까지 계속돼 동유럽에서 만주까지, 시베리아에서 인더스강까지, 사실상 인도와 서유럽을 제외한 유라시아의 대부분을 정복했다.

이것은 역사가 일찍이 보지못했던 거대한 제국의 탄생이었다. 이 제국은 14세기 중반 이곳 저곳에서 반란이 일어나 금이 가기 시작할 때까지 위엄을 지켰고 러시아 같은 나라는 16세기 들어서야 겨우 「타타르의 멍에」를 벗어던질 수 있었다. 몽골제국을 이처럼 지속케 했던 그 힘의 근원은 무엇이었을까.

이러한 의문들에 대한 손쉬운 해답은 없다. 만약 그러한 해답이 있었다면 지금까지 몽골제국에 대해 쓰여진 수많은 책과 학자들의 땀은 얼마나 무익한 것이었겠는가.

그 해답이 어디에 있든, 일단은 칭기즈칸 출현 당시 몽골초원의 상황은 어떠했는가, 그는 거기서 어떻게 지도자의 자질을 연마했는가, 몽골기마군대의 위력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그들과 맞서 싸웠던 다른 나라들은 어떠한 약점을 지니고 있었는가 하는 의문에 답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의문은 책상머리의 상상과 추측만으로는 풀릴 수 없다. 춥고 황막한 몽골초원을 직접 보고, 몽골사람들의 순박하고 강인한 체취를 느끼며, 그들이 말을 달려 정복했던 지역들을 하나하나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런 뒤에야 우리는 비로소 칭기즈칸과 몽골제국이 가져온 「세계사의 새로운 탄생」이 던져주는 수수께끼를 풀어볼 용기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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