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다섯 가지 물감 담긴‘신들의 팔레트’

  • 입력 2002년 12월 2일 16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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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쓰촨(四川)성의 주자이거우(九寨溝)와 황룽(黃龍)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우화하이(五花海). 물빛이 남색, 파란색, 녹색 등으로 변하는 것이 이채롭다.


‘신비롭다’는 말은 이런 풍경을 위해 만들어진 것 아닐까. 100개가 넘는 호수와 폭포, 원시림이 곳곳에 흩어져 있는 주자이거우의 자연은 다른 말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특히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호수는 그림물감을 풀어놓은 거대한 팔레트 같아 여행객들의 눈을 혼란케 한다. 호수 위로 잔잔하게 깔리는 운해(雲海)는 또 어떤가. 주자이거우는 다른 곳에서는 만날 수 없는 감동이 기다리는 중국 서부의 숨겨진 보석이다.

바위에 흩뿌려지는 물방울이 마치 진주가 구르는 것 같다는 전주단(珍珠彈) 폭포

갈대바다와 불꽃바다가 천둥을 부르고

청두(成都)에서 북쪽 계곡을 따라 꼬박 하루를 달려 주자이거우에 당도한 것은 이미 어둠이 사방을 뒤덮은 후였다. 피곤한 몸을 뉘어 잠에 빠져들었지만 생각과 달리 늦잠을 잘 수는 없었다. 여행객을 재촉하는 버스의 경적 소리 때문이다. 덕분에 낯선 땅을 찾아 나선 발걸음은 더욱 바빠진다.

주자이거우 입구에서 버스를 타고 2~3분 올라가면 왼쪽으로 자루사라는 절이 보인다. 원시삼림으로 덮여 있는 자루사는 규모는 작지만 아주 오래된 고찰로 지금도 여러 명의 라마승이 수도를 하고 있다. 자루사에서 조금 더 올라가다 보면 왼쪽에 갈대로 둘

갈대숲에 둘러싸인 류웨이하이(蘆葦海)는 한적하기 이를 데 없다.

러싸인 호수가 보인다. 이름하여 ‘갈대바다’라는 뜻의 류웨이하이(蘆葦海). 이 호수는 곧 훠화하이(火花海)로 이어지는데, 이는 노을이 물들면 마치 ‘불꽃처럼 아름답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훠화하이를 지나면 크고 작은 호수 19개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수정췬하이자이(樹正群海寨)를 거쳐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지점에 뤄르랑(洛日浪) 폭포가 있다.

투명한 호수의 다섯 가지 색깔

해발 2000m 지점에 있는 이 폭포는 중국을 대표하는 폭포 중 하나로 천둥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다. 뤄르랑 폭포에서 이어지는 두개의 코스 중 먼저 장하이(張海)로 가는 방향을 택했다. 뤄르랑 폭포에서 버스로 40분 정도 올라가니 우차이츠(五綵池)가 나왔다. 주자이거우 호수들의 특징인 ‘투명한 물빛’만을 놓고 따지자면 이곳이 단연 으뜸이다. 호수 바닥에 가라앉은 나무는 물론 모래 알갱이까지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물이 맑다. ‘다섯 가지 색을 만들어낸다’는 이름답게 호수는 초록색, 남색, 파란색, 검은색 등으로 보는 각도에 따라 끊임없이 색깔이 변한다.

주자이거우에서 가장 오래된 고찰인 자루사. 주자이거우에 사는 창족(藏族)은 대부분 라마교를 믿는다.

여기서 1㎞ 정도 더 올라가면 주자이거우에서 가장 큰 호수인 장하이(張海)를 만날 수 있다. 장하이 앞에는 나뭇가지가 오른쪽으로만 자라는 외팔이 소나무가 있는데, 이 지역 원주민인 창족(藏族)은 그 나무가 장하이를 지키는 외팔이 할아버지의 화신이라고 믿고 있었다.

뤄르랑 폭포에서 원시삼림 쪽으로 가다보면 제일 먼저 만나는 것이 전주단(珍珠彈) 폭포. 햇빛을 받아 반짝이며 바위에 흩뿌려지는 물방울이 진주구슬이 흐르는 것 같다. 전주단 폭포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우화하이(五花海)가 나온다. 우차이츠에 버금갈 정도로 투명한 물빛을 자랑하는 우화하이에서 관광객들은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느라 정신이 없다. 이곳에서 다시 8㎞를 올라가면 원시삼림 지대. 글자 그대로 처녀림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태초의 아름다움이 방문객을 맞는다.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물이 층층이 고여 있는 황룽의 연못들은 자연의신비로움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주자이거우를 찾은 발길은 100㎞ 가량 떨어진 황룽(黃龍)으로 이어졌다. 황룽은 주자이거우와 더불어 중국이 자랑하는 자연유산으로 코발트 빛 연못이 계단식으로 이어지는 독특한 풍경을 자랑한다. 황룽의 수많은 연못 중에 으뜸인 곳은 해발 3000m가 넘는 곳에 위치한 황룽사 뒤편 계단식 연못이다. 이 곳으로 향하는 길에는 산소 튜브를 이용해 호흡하면서 걷거나 ‘화간’이라는 가마를 타고 올라가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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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쁜 숨을 몰아쉬며 꼬박 2시간을 걸어서 황룽사에 도착하니 꿈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눈앞을 가득 메운 것은 하늘색 빛을 발하고 있는 계단식 연못과 황룽사의 아름다운 조화. 뒤로는 만년설산의 굽이치는 능선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곳에 온 관광객은 누구나 자연이 연출한 아름다움에 취해 환경주의자가 된다는 얘기가 빈말이 아니다. 하루가 다르게 빌딩이 솟는 연안도시와 끝없이 넓어지는 공장지역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중국 대륙의 투명한 속살을 본 느낌이었다.

여행작가 김선겸의 낯선 땅, 낯선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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