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종화/독감 바이러스와 ´IMF 5년´

  • 입력 2002년 11월 20일 18시 11분


30년 동안 고도성장의 길을 달려오던 한국 경제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벌써 5년 전의 일이다. 예상치 않았던 위기로 극심한 경제적 고통과 사회적 불안을 겪었다. 그러나 우리 경제가 빠른 속도로 회복되면서 IMF 졸업을 외친 지도 이제 오래된 것 같다.

과연 1997년의 외환위기는 다시는 겪지 말아야 할 ‘제2의 국치(國恥)’였는가, 아니면 일본식 장기 복합불황을 피할 수 있게 한 ‘위장된 축복’이었는가. 지난 5년간 달성한 구조조정의 성과는 앞으로 위기의 재발을 막을 만큼 충분한 것인가.

▼´조기극복´ 자화자찬은 위험▼

우선, 외환위기를 겪게 된 것을 한국의 경제시스템에 큰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너무 비하할 필요는 없다. IMF 구제금융은 영국 프랑스 핀란드 같은 선진국도 과거에 겪은 일이다. 고도성장 과정에서는 드러나지 않던 구조적 결함과 국제 투기자본의 횡포로 상징되는 국제 금융시장의 내재적 불안정성이 합쳐져서 외환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우리가 외환위기 2년 후부터 빠른 성장을 회복한 것에서 보듯 고도성장을 이룩한 근본적인 힘은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98년에 겪은 고통의 정도는 과거의 위기 국가들에 비해 너무 컸다. 이는 한국 경제가 안고 있던 금융부문의 부실, 대기업의 차입 경영, 미흡한 정책 대응의 문제들이 심각했다는 증거이다. 우리가 겪은 외환위기의 본질은 치명적인 심장마비보다는 독감 바이러스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러나 허약한 환자는 독감으로도 사망할 수 있다. 우리 경제의 체질을 강화해 또다시 IMF의 수술대에 오르는 일은 피해야 할 것이다.

다시 외환위기를 겪을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우리가 외환위기를 남달리 성공적으로 극복한 것으로 자화자찬하진 말아야 한다. 아직 주가와 민간 투자는 위기 이전의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한번 외환위기를 겪은 국가들 중 절반은 7년 이내에 위기를 다시 겪었다. 지금까지의 구조조정에 대한 성과를 과장해 미래를 낙관하는 것은 위험하다.

우리 경제가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나 외환위기 이전과 비교해 얼마나 근본적으로 나아졌는지는 의문이다. 앞으로 위기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많다.

첫째, 과거와 같이 정부가 주도하는 고도 성장전략은 한계에 부닥쳤음을 인식해야 한다. 위기의 한 원인이었던 기업의 비효율적 과잉투자와 금융부실은 정부의 지원에 힘입은 것이다. 최근 5년간 이뤄진 벤처에 대한 적극적 지원정책 역시 실패했다. 그러나 비전을 제시하고 단기적인 거시 경제조정을 해야 하는 정부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 개방된 시장경제의 틀에 맞춰 장기적인 안정성장을 추구하면서 유사시에 대비하는 위기관리 능력을 더욱 높여야 한다.

둘째, 외국인 직접투자 도입에 더욱 힘써야 한다. 개방 경제의 가장 중요한 주체는 외국인이다. 국내 생산에 투입된 외국인의 장기 투자는 경쟁을 통해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한편 갑작스러운 자본유출을 막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셋째, 동아시아 및 전 세계 국가들과의 금융 협력을 높여야 한다.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정에 대비한 국가간 협력장치가 필요하다. 동아시아를 둘러싼 일본과 중국의 패권 싸움에서 한국은 소외될 가능성이 크다. 2004년 IMF이사국이 되는 것을 계기로 국제 금융기구에서 우리의 발언권을 확대해야 한다.

▼경제체질 개선 계기 삼아야▼

5년 전 IMF로 간 것은 앞으로 반복되지 말아야 할 불행이었지만 우리 경제의 체질 개선에 있어선 좋은 계기였다. 하지만 IMF를 졸업한 이후 우리 손에 의해 이뤄진 지난 2년간의 개혁은 IMF체제 때보다 못했다. 우리의 목표가 선진국처럼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경제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라고 한다면 개혁의 완성은 아직도 멀다. 우리 경제의 경쟁력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 5년간 미흡했던 것을 반성하고 잠재력을 살려 재도약의 기반을 마련해야 할 때다.

이종화 고려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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