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주의 건강세상]어린이 우울증

  • 입력 2002년 11월 17일 17시 26분


밤낮 없이 눈을 못 감아 목어(木魚), 목탁(木鐸)의 본보기가 된 물고기가 그렇게 부러웠다니….

초등 5학년, 생때같은 아이가 일기장에 ‘바닷 속의 물고기처럼 자유로워지고 싶다’고 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학원 숙제에 짓눌린 채, 왜 어른보다 어린이에게 자유시간이 적은지 이해할 수 없다고 원망하며….

어른들은 과도한 사교육 탓을 하며 잠시 한숨을 지었다가, 지금껏 으레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일상에 빠지면서 비극(悲劇)을 잊고 만다. 그러나 이번 일을 통해 아이들의 그늘진 마음을 좀 더 깊이 봐야 한다.

소아정신과 전문의들은 한결같이 이 아이가 우울증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우울증은 삶의 궤적이 깊이 서린 어른들만의 병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지만 아이들에게도 적지 않게 생긴다.

미국에선 초등학교 입학 전 어린이의 1%, 초등학생의 2%가 병원에 가야할 정도의 우울증 환자라는 조사결과가 있다. 한국에는 이보다 많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을 듯하다.

어린이 우울증은 어른 우울증과 마찬가지로 뇌에서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의 분비 시스템이 깨져 생기며 유전적 원인에 환경적 원인이 더해져 발병한다.

어린이 우울증은 환자가 감정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른과는 증세가 달라 ‘가면(假面) 우울증’이라고도 불린다.

자녀가 갑자기 학습 능력이 떨어지거나, 안절부절못하거나, 무서움을 많이 타거나, 배나 머리 등이 아프다고 칭얼대거나, 따지기를 좋아하게 되거나, 자신의 처지를 탓하거나 ‘죽고싶다’고 말하거나, 참을성이 없어지면 일단 우울증을 의심해야 한다. 이를 방치하면 야뇨증(夜尿症)이 잘 생긴다. 다행히 우울증은 정신과 치료 중 잘 고쳐지는 질환이다.

어린이 우울증은 자녀에게 절대 순종을 기대하거나, 지나치게 어른스러울 것을 강요하거나 폭력적인 부모의 자녀에게서 많이 생긴다. 성공에 대한 과도한 기대도 아이를 우울하게 만든다.

반면 사랑과 칭찬은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시켜 우울증을 예방한다.

어린이에 대한 사랑은 이밖에도 많은 것을 준다. 어미 쥐가 새끼 쥐를 핥아주면 세로토닌과 성장유전자, 지능 관련 유전자의 기능을 활성화시킨다. 세로토닌의 분비가 촉진되면 나중에 술과 담배를 멀리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1970년대 일부 얼치기 여권론자들이 가정주부를 비하하고 무조건적인 취업을 부추긴 것은 명백한 죄악이다. 여성이 사회활동을 잘 하는 것 못지 않게 집에서 아이들을 사랑으로 잘 키우는 것도 생산적인 일이다.

부부가 맞벌이를 해야 한다면 둘 중 한 명이라도 매일 퇴근 이후 자녀와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아이에게 사랑을 베풀어 밝게 키우는 것은 부모의 의무다.

stein33@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